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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기획자 정도전, 조선을 설계하다. 또 선거철인가 보다. 금방 약속하고 새로 파트너를 바꾸며 공약을 열심히 내세우니 말이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이들을 보며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공약이란 자신이 권력을 쥐게 되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노라고 공표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의 청사진이요 설계도다. 그래서 민중은 공약을 보고 지도자를 뽑는다. 여말선초에는 선거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런 공약을 가진 이들 밑에 엘리트들이 줄을 섰다. 게중에는 보스가 어떤 길을 걸어가도록 권면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른바 참모요 책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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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8.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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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온유(溫柔)를 발하다정치가 혼란한 중에 자신의 중심을 똑바로 잡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늘에 그런 인물들을 찾기 어려우니 ‘역사산책’에서 앞서 간 선인들의 모범을 찾을 수밖에... 고려 조정에서 실력있는 인재로 촉망받던 맹사성은 자신의 출세길이 활짝 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경이 찾아왔다. 새로운 신세계 조선이 개창했기 때문이다. 조부 맹유가 조선에 반대하여 두문동 72현이 되었고 아내의 조부가 고려 사직을 책임지던 최영 장군이었으며 고려 충신 정몽주는 아버지 맹희도의 절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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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7.3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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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꽉 막힌 조선 공직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다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목소리는 너무도 다양해서 옳고 그름을 쉬 분간하기 어렵다. 좋은 말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과 교류해야 소통과 관용의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퇴계를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의 왕과 신료들은 조선 최고의 학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퇴계 이황을 끊임없이 조정으로 불러내려 했다. 그들은 퇴계로부터 꽉 막힌 조선의 경색된 정치를 해소할 비책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퇴계는 34세에 벼슬을 시작하여 70세에 사망할 때까지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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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7.0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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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영의정 내던지고 정조를 지킨 보디가드 채제공은 영조와 정조 시대에 정치적 회오리와 갈등속에서 오로지 백성과 군주만을 위해 충성했던 보기 드문 정승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오르고 싶어 하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 자리를 미련없이 던졌다. 채제공은 영의정에 오르자마자 자리를 걸고 폭탄의 뇌관과도 같은 사도세자 문제를 거론하며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영조 유훈 이후 아무도 거론치 않기로 했던 사도세자 문제를 내걸어야 할 만큼 정조의 정치적 위상은 어려웠던 것이다. 채제공이 목숨을 걸고 자리를 던진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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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6.19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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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전도사 김육, 정치를 던지고 민생을 위한 진짜 공복이 되다말로만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지도자가 즐비한 세태에 진정한 공직의 표상을 찾으라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 속에서는 진정한 공복의 표상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우리 역사 상에서 서민의 삶을 위해 한 평생 일한 진정한 공직자 한 명을 꼽으라면 잠곡 김육(1580~1658)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정치적으로 북벌을 외치고 반청숭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시절, 정치를 버리고 서민을 위해 올인했다. 김육의 삶과 업적은 21세기 공직자들에게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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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6.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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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정문부를 죽인 치졸함, 역사는 지켜보고 있었다선조가 비난받는 것은 결국 임진왜란 때 자신이 살겠다고 피신 먼저 한 일 때문이다. 군주의 체통을 잃어버렸고 내로라하던 권신들도 자신의 안위와 피신에만 정신을 쏟은 것이다. 그러나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의병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정문부는 왜병과 싸워 온 몸을 바쳐 함경도를 구한 의병장이었으나 너무나 사소하고 치졸한 모함 끝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를 기리는 기념비조차 일본에 도적질당했다가 간신히 조국으로 돌아왔다. 함경도에서 백전백승을 거두다고려대학교 박물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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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6.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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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을 포기해 쇄국을 자초한 인조의 리더십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는 1627년 조선에 표착한 최초의 서양귀화인 박연이다. 26년 뒤 같은 나라에서 하멜이 36명의 선원들과 함께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 벨테브레와 하멜의 표착은 조선을 쇄국에서 개방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해상왕국이라고 부를 만큼 전세계 해양을 제패하던 선진강국이었다. 그 때 인조와 효종이 벨테브레와 하멜의 석방과 귀국을 둘러싸고 양국간 당국자 회담을 열었다면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개국이나 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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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5.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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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가 유길준, 조선말 격랑의 파고에 뛰어들다구한말 가장 불운했고 가장 탁월했던 인물로 단연 유길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1881년 봄 신사유람단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한 근대 유학생 1호 유길준, 그는 일본서 유학을 시작하고 2년 뒤 1883년 민영익을 대표로 세운 보빙사의 수행원 자격으로 선발되어 미국을 돌아보았다. 여러 구미제국을 여행하고 선진 문물을 경험한 그가 남긴 대작이 이다.이 대작을 쓰고 조선 개화의 물꼬를 텄던 그는 한창 일할 나이에 일본으로 망명했고 이국땅 외딴 섬에 강제 유배되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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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5.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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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 국적을 벗어나 명분으로 나라를 지키다독도와 위안부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문제로 한일간 관계가 끝없이 악화되고 있다. 일본은 사사건건 우리나라와 대립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인 중에는 한반도에 대한 애정과 우정을 갖고 우호적으로 대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오늘 그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한다.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 대륙을 공략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것은 명백한 상황 판단 미스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내부의 반대자를 의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반도 침공을 반대한 조총 전문가였던 인물이 임진란이 개전되자마자 조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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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4.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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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록보물 실록과 의궤, 침탈의 환란을 견뎌내며 민족혼을 지키다조선의 위대성을 여럿 논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기록 문화의 강점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특히 실록과 의궤는 세계 어느 나라 유산과 비교해도 월등히 우수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말끝마다 한국을 폄하하는 일본은 조선시대가 양반들의 무능하고 나약한 정치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조선은 결코 나약하고 무능한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은 500년 간 왕권과 신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정체성을 잘 유지해 온 점에서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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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4.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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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은퇴할 때 시작한 황희,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예순의 나이면 지금도 은퇴하고 남을 나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이 늦은 나이에 오히려 정치를 새로 시작한 인물, 그가 바로 세종의 오른팔이었던 황희다. 흔히 사람을 구분할 때, Task-Oriented(과업 중심형) 인재인가, 혹은 People, or Relation-Oriented(인간, 관계 중심형) 인재인가를 따지게 된다. 대부분의 유형은 이 둘 중 한 가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황희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황희의 리더십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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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4.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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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과 박규수, 수구와 개화의 갈림길에 서다 조선의 대표적인 개화파 박규수는 1807년생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20년생이니 이하응이 한참 연하였다. 두 사람은 출생 환경도 갖고 있던 철학도 달랐지만 본의 아니게 재야에 파묻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오랫동안 살았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장성한 후 20년 안팎의 긴 세월을 재야에서 보냈고 그 사이 혼탁한 세상을 바라보며 조선을 개혁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암중모색이라고 할 만한 이 기간의 고통이 두 사람에게 축적된 에너지로 남았을 것은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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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3.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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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화타 허준,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칠 신의(神醫)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낳은 명의 허준과 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허준의 은 사실 서양의학이 독주해 온 상황 아래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가 드라마 이 1999년부터 이듬해까지 크게 히트하면서 일반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우리 역사를 통해 의 진정한 가치와 허준의 영향력이 어땠는지를 다시 살펴볼 일이다.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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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3.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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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을 이루고도 포기한 후회태종 이방원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죽게 하고 2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들까지 잔인하게 숙청한 철권 통치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 인물이다. 드라마 세종에서도 태종은 강하고 고집센 인물로 그려졌다,하지만 코끼리 다리 하나만 본 일방적이고 편향된 시각일 뿐이다. 그는 국방을 강화하고 무기를 개량했으며 아직 일천하던 조선의 국력을 크게 키워 500년 역사를 활짝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세종의 치적은 거의 모두가 아버지 태종이 기반을 마련해 놓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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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2.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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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독립의 꿈이 수원 천도 실패로 사라지다수도를 바꾸는 것은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단기적인 전략이 아니라 100년 국가대략을 새로 세우는 중요한 일이다.정조 대왕이 꿈꾼 새로운 수도의 이상향은 부정과 부패가 없고 당파와 정략적 갈등이 없이 오로지 백성들과 임금과 신하가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잘 살아가는 부강한 나라의 서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서울에서 수원으로 수도를 옮겨 가려던 정조대왕의 거창한 꿈은 그의 급작스런 죽음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를 끝까지 해코지 하던 정순왕후는 순종의 뒤에서 수렴청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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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2.14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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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성웅이라고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사실 그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가 판옥선을 개조해 만든 거북선조차도 실제 모습과 다르게 알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이 글은 이순신 장군의 숨겨진 리더십과 거북선의 실체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가 일본 수군과의 싸움에서 행한 세 가지 전술전략의 강점을 살펴 오늘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경제위기를 이기는 전기를 마련해 보자.'판옥선의 약점을 거북선으로 대체하다'1592년 5월 29일 사천 해전에서 이순신은 거북선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미 1차 출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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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21.02.0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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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탐방’이 850km의 대장정을 완주한 후 막을 내렸다.서울에서 합천까지 백의종군길 탐방은 많은 감동과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다. 모든 관직을 잃어버렸지만 풍전등화 위기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백의종군 신분으로 기꺼이 떠난 이 길에서 이순신 장군의 충정과 열정 필사즉생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에 충무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전승훈 이순신학교 교수는 “백의종군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아 널리 알릴 수 있는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넘치는 길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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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기자
2021.02.06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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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6’자로 바뀌던 해는 ‘5’자로 바뀔 때보다 더 큰 진폭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해는 이력서에 있는 줄을 1년에 1줄씩 늘려보겠다는 결심으로 작년에는 백의종군로 탐방을 했고, 올해는 수군재건로 탐방을 준비하고 있다. '안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고도 가능하지만 '느낀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고는 모른다. 길 위에서 느낀 ‘이순신 정신’과 ‘이순신 리더십’은 강의장이나 책 속에서는 느낀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길 위에서 느낀 ‘이순신 정신’은 마법과 같은 힘이 있었고, ‘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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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2021.01.16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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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모든 분야에 능통할 수는 없어도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운주당(運籌堂)을 운영했고, 포구의 백성을 길잡이로 삼을 만큼 현장 중심의 전략과 지략으로 조선을 구했다. 현장을 모르는 선조의 명령인 부산출정을 거역한 것도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조선 수군의 떼죽음을 막기 위한 충절이었고, 이러한 장군의 신념과 노력은 많은 사람의 지지와 전폭적인 응원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는 말은 우연히 찾아온 사랑은 있지만, 우연히 떠난 사랑은 없다는 뜻이고 인연은 생물이라 관심과 돌봄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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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2021.01.0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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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와 관련해서 가장 큰 이슈중의 하나는 신천지예수교회 이만희 총회장과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였다. 두 사람 모두 코로나 확산의 중심에 서며 교도소에 수감되는 불운을 겪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종교 지도자가 구속된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저주받은 질병이 세계를 덮친 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내일을 알수 없는 불안과 공포의 흉흉한 시대에서 책임자 처벌이 당연시 되었다. 엄청난 여론에 힘입어 박수를 받으며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법무부에 따르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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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국장
2021.01.07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