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발굴조사 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 청자 제작 관련 공방지와 감독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는 고려 시대 청자 발생기의 ‘초기 청자’를 생산하였던 가마터로서 가마와 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갑발(匣鉢)과 가마벽체, 청자 등이 폐기되어 형성된 퇴적구릉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 (자료출처:문화재청) 시유공

가마와 퇴적구릉에 인접해 있는 공방지에서는 ‘연토장(청자 태토 저장), 시유공(유약 바르는 곳), 건조장(그릇 건조)’ 등 청자제작과 관련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특히, 각 작업공간은 갑발을 칸막이로 사용해 작업 공간을 분할하고 있어 초기 청자의 제작이 각 공정에 따라 분업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건물지는 담장시설 내부에 ‘冂’자의 배치형태를 띠고 있다.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는 1983년 1차 발굴조사 당시에 1022년을 의미하는 거란의 연호 ‘태평 임술(太平 壬戌)’이 적힌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음에도, 그동안 청자가마와의 관계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 건물지의 하층인 기단채움토에서 ‘중간단계해무리굽완’ 청자가 출토됨에 따라 가마의 운영기간 중 신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발굴조사를 통해 공방지와 건물지 등 관련 시설이 확인됨으로써,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청자 제작공정과 운영 실태를 밝히고, 초기 청자요지의 경관을 복원하는데 보다 구체적인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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