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목숨 걸었던 등강기

“특히 체력 아낄 때 큰 도움”

창간호를 시작으로 세 번째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본지의 원고 마감날과 겹쳐 아쉽게도 박충길 씨를 직접 만나 볼 수는 없었지만 릴레이식 인터뷰인데 독자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 전화와 서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솔직히 서면 인터뷰가 좀 더 수월할 줄 알았으나 굵고 짧은 입담을 자랑하는 박충길 씨는 조금 어려웠다. 얼굴이라도 마주하고 있었다면 꿋꿋하게 말꼬리라도 부여잡고 더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편집자>


“산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유를 얻은 기분이 들죠. 그것 자체가 즐거워요. 제가 등반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같아요. 20년 전쯤 비 오는 날 북한산 백운대에 갔다가 인수봉 남면에서 홀로 등반하는 사람을 보면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유!(웃음) 저는 자유를 갈망하는 놈인가 봐요.”

Q 사연이 있는 장비는 어떤 것인가요?
“등강기입니다. 주마라고 많이 부르죠. 주마라는 명칭은 스위스의 한 회사에서 만들 때 사용한 이름이죠. 처음 빅월등반 때부터 18년 동안 인공등반이나 원정 때 항상 사용하곤 했어요. 물건을 올릴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고, 특히 체력을 아낄 때 큰 도움이 되죠. 이것도 스위스 제품인데 회사는 잘 모르겠어요. 가격은 그 당시 7만원 정도 했죠. 7만원 주고 18년 정도 사용했으니까. 속된 표현으로 뽕은 뽑았네요. (^^) ”

등반 중 등강기가 요긴 했던 때를 묻자. 등강기는 항시 요긴했다는 말을 한다. 박충길씨에게는 항상 필요한 장비 주마! 그는 주마에 수차례 목숨을 걸곤 했다.

Q 장비에 대한 욕심이 많다던데…
“나만 욕심이 있는 건가요? 장비는 우리 같은 산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거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는 목숨과 직결되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죠. 모든 장비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 모든 것이 탐이나요. 신제품이 나오면 꼭 체크해서 눈여겨보고요. 하지만 제게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들만 구입해서 사용해 봐요. 이 정도의 욕심은 누구나 있을 것 같은데요.”

Q 일생에 가장 즐거웠던 등반을 꼽는다면 어떤 등반인지
“2008년 파키스탄 아딜피크 등반이 정말 좋았어요. 세상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한 등반이라서요. 묵묵히 산에 오르는 것, 그 등반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저는 같이 간 동료를 이유로 들고 싶어요. 진짜 그랬거든요. 그때 참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그때 같이 간 친구가 김형일 씨죠. 사실 이 친구보다 형일씨 동생 고 김형진 씨를 먼저 알고 지냈어요. 후에 등산학교에 다니면서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서로 호감을 느끼고 절친이 됐죠(^^)”
박충길씨는 산사람 보다는 산사나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사나이에게 우정이란 어떤 의미일까?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친구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묻어 나온다. 지금 시대에는 거칠고 투박스럽게 들릴지도 모르는 그들의 낭만어린 우정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Q 부인께서 질투를 하실 것 같아요.
“제 와이프도 산에서 만났어요. 질투라… 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없어요. 그 친구와 산에도 자주 가긴 하지만 좀 더 많은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편이에요. 늘 고마운 사람이지요.”

Q 올해 부상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칸첸중가 옆 자누 동벽 등반 때 크레바스에 빠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아픔보다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너무 미안했죠. 저는 스스로를 많이 채찍질하는 스타일이에요. 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컸어요. 갈비뼈의 부상보다 마음의 부상이 더 컸죠. 죽는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Q 원정을 다녀오면 체력적으로 소모가 큰데 다음을 기약하시나요?
“저에게 산은 즐거움 그 자체에요. 어렵고 고통이 따르고 부상을 해도 말이죠. 산에 관련된 모든 상황은 즐겁게 인식하는 뇌 구조를 가졌나 봐요(^^) 일 열심히 해서 새로운 원정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산은 누가 보든 안 보든 그저 내가 진행해 나가야 할 인생의 방향이죠. 그곳에 닿는 길이 험할지라도 제게 무한한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주거든요.”

Q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걸까요. 박충길 씨와 산에 가면 왠지 즐거워질 것 같은데요?
“하하하, 산에 한번 가 보세요. 요즘 산악 동호회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무척 적극적이죠. 힘이 넘치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아요. 요즘 휴가철이잖아요. 산에 가고자 하는 분들께는 설악산 등반지를 추천하고 싶네요. 특히 비선대산장에 가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좋죠.”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저는 원래 인터뷰를 즐겨 하지 않아요. 기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이 전 좀 불편했거든요. 바끄로의 인터뷰도 추천을 받아 응하게 됐지만 다행히 무겁거나 진부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열심히 놀고 있어요. 가보고 싶었던 외국의 산에 갈 생각이에요.”

종교가 불교인 박충길 씨는 20년 동안 한 번도 목에 건 염주를 빼놓은 적이 없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잘할 수 있다는 생각과 행복한 잔상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에는 이런 기도를 한다. “만약에 누군가 꼭 다쳐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누군가가 제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두려워말고 의연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이정은 기자 jung@baccro.com

박충길 Profile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92년 5월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 15기 졸업  
1994년 고창 할매바위 개척등반
1995년 8월 요세미테 엘케피탄 이스트버트레스 등반
1996년 9월 요세미테 엘케피탄 노오즈 루트 등반
1997년 9월 요세미테 하프돔 노오스페이스 등반
1999년 8월 캐나다 부가부 ‘전사의 길’ 등반
2000년 8월 요세미테 엘케피탄 사라테월 등반
2001년 캐나디안록키 부가부 스노우패치 등반, “산바의아침”, “마이 허니강” 개척
2002년  5월 유럽알프스 돌로미테산군 등반
2004년 설악산 장군봉 남서벽, 유선대릿지 개척등반
2005년  키르키즈 악수북벽 등반                 
2006년 알프스 몽블랑 등반
2008년 파키스탄 아딜피크 등반                  
2011년 자누 동벽 등반

 

 

다음 시간에는 산사나이 박충길 씨가 추천한 박윤정 씨를 만나 봅니다. “이 친구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산을 대해요. 그 진중함이 좋습니다. 바쁘지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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