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네 번째 -

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대항해 시대를 연 항해의 원동력, 히팔루스의 계절풍

인류는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배를 만들어 띄우고 수평선 너머로 항해했다.  그 너머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었다. 고작해야 뗏목이나 통나무배에 몸을 싣고 해와 별, 바람에 의존하여 나아갔다. 그리고는 노에서 돛으로, 육지 스케치에서 해도로, 눈으로 육지를 보는 방식에서 별자리 관찰로, 본능적 감각에서 나침반으로, 지구는 네모라는 믿음에서 둥근 지구 인식으로, 급기야 연안에서 큰 바다로 나아갔다. 

▲ 자료출처: Richard Woodman, The History of Ships, p.17_ 페니키아의 전선과 상선

역사적으로 알려진 항해는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이루어졌다. 기원전 1000년경 안데스인은 뗏목을 타고 멕시코의 마야 문명과 왕래하였다. 기원전 600년경에는 페니키아인이 지중해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을 왕래했다. 

1~2세기 아랍 상인들은 홍해와 인도양을 연결하여 유럽과 인도 사이를 가로질렀다. 6세기에는 아일랜드 수도사가, 10세기에는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 11세기부터 폴리네시아인은 카누를 타고 수 천km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 제도와 이스터 섬을 발견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 가마(Vasco da Gama)나 콜럼버스(Columbus), 그리고 마젤란(Magellan)의 항해는 역사의 기록에 기대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경향이 있다. 그들에 앞서 바다로 간 이름 없는 항해자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여정이었다. 오늘날 해양인은 이 용감하고 모험심에 불타는 선배 항해자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럼 인류는 어떤 힘으로 바다로 나아갔는가? < 영화 300: 제국의 부활 >에는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해군을 맞아 풍전등화의 해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 문명이 지중해에서 격돌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거센 파도속에서 페르시아 군선(軍船)과 그리스 노선(櫓船)인 갤리선(Galley, 지중해에서 쓰던 배의 하나로 양쪽 뱃전에 아래 위 두 세 줄로 노가 달린 선박) 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 자료출처:영화 ‘벤허’

배의 갑판에서는 전투가 벌어지지만 갑판 아래에는 일렬로 앉은 병사들이 북소리의 음에 맞춰 거대한 노를 일제히 젓는다. 노는 배의 양 옆으로 2단 또는 3단으로 설치되어 있다. 배안에서 앉은 상태로 노를 저으면 그 힘으로 배가 나아간다. 노를 젓는 병사들의 굵은 팔뚝에 핏줄이 튀어나온다. 갑자기 적선과 충돌하면서 물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노젓기를 멈출 수는 없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힘껏 젓는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 벤허 >나 < 클레오파트라 >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처럼 고대에는 배를 움직이는데 근육의 힘을 추진의 주동력으로 사용하였다. 돛이 있더라도 아직 정교하지 못하여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노를 젓기 위해 많은 노예나 병력이 필요하였다. 아직 바람의 힘을 주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배의 형태는 다르지만 동양에서도 인간의 육체적 힘을 동력으로 이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8세기 동북아 해상을 호령했던 통일신라 장보고의 청해진과 해상국가였던 고려의 개성상인 상단이 그랬다. 15세기 초 동남아를 거쳐 아프리카를 7차례나 원정했던 명나라 정화 원정대의 정크선(Junk)에도 많은 노와 노꾼이 필요했다. 그 결과 중요한 무역이나 전쟁은 팔의 근력이 감당할 수 있는 가까운 바다에서 주로 벌어졌다. 이처럼 항해의 주 동력이 팔뚝의 힘에 의해 노를 젓는 방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 천 년 이상 계속되었다.

한편, 기원전 1세기경 그리스인 조타수 히팔루스(Hippalus)는 규칙적인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배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가 발견한 바람은 ‘몬순(계절풍)’으로 이 바람은 그의 이름을 붙여 ‘히팔루스의 바람’이라고도 한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_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1527.4~1598.7)의 에리스리안해

몬순의 원리는 이렇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에 의하여 발생한다. 그런데 육지는 바다보다 쉽게 데워지고 쉽게 식는다. 여름철 해가 뜨면 육지의 온도가 빨리 오른다. 기온이 높아진 곳의 공기는 가벼워져 위로 올라간다. 그러면 그곳에 저기압이 발생하고 상대적으로 고기압인 바다에서 육지로 공기가 이동한다. 여름에 해변에 가면 바다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밤이 되면 육지의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낮과 반대로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분다. 

이렇듯 바다와 육지 사이에 부는 바람은 수 km 범위에 국한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는 위도에 따라서 수천 km 범위로 확대된다. 이러한 원리로 인도양에는 여름철 아프리카 바다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강한 계절풍이 불고 겨울에는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약한 계절풍이 분다.

히팔루스의 발견 이래 아랍 상인들은 이 계절풍을 이용하여 유럽에서 홍해를 지나 아라비아해와 인도양을 거쳐 인도에 다다르는 항로를 개척하였다. 여름철에 홍해에서 인도로, 겨울철에는 그 반대로 배를 띄웠다. 큰 바다 중에서 인도양이 가장 먼저 개척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리고 계절풍을 뜻하는 ‘몬순(Monsoon)’도 ‘계절’을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인 ‘마우심(Mausim)’에서 유래하였다. 

▲ 자료출처: The New York Public Library_ 아라비아해 무역에 사용된 다우선, 1873.

히팔루스의 바람을 이용하였던 아랍 상인들은 항해의 전문가였다. 그들이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하는 배를 ‘다우선(Dhow)’이라 한다. 이 배는 선체를 구성하는 나무 조각을 연결할 때 못을 쓰지 않으며 세로로 길쭉한 삼각형의 돛을 사용한다. 

유럽의 사각돛은 많은 바람을 한꺼번에 받아 배의 속도를 내기가 용이하지만 무겁고 다루기가 어려워 역풍을 거슬러 항해할 수 없었다. 다우 삼각돛은 사각돛에 비해 많은 바람을 받지는 못하지만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배의 방향을 조종하기가 쉬운 특징이 있었다. 오늘날 요트나 윈드서핑의 돛과 유사하다. 이러한 다우 삼각돛의 장점은 후에 지중해로 전해져서 유럽인에 의해 라틴 세일로 개량되고 유럽의 사각돛과 결합하면서 대항해 시대를 열어가는 항해기술로 발전하였다.

▲ 자료출처: 송동훈의 세계문명기행_ 포르투갈 엔히크 왕자의 항해학교

바람을 항해의 주동력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먼 바다에 나갈 수 있었다. 15세기가 시작되면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다. 최초 항해의 경쟁국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포르투갈에는 항해왕자 엔히크(Henrique)가 있었다.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의 셋째 왕자였던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다에 바쳤다. 항해학교를 만들어 항해의 선진기술을 가진 무슬림과 유대인을 초빙하여 항해사를 양성하고 선박을 건조했다.

그의 계획은 아프리카 서안을 따라 돌아 동쪽으로 항해하여 인도에 다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이 끝나는 곳과 카나리아 제도 사이에 보자도르 곶(Cabo Bojador)이 버티고 있었다. 남쪽으로 바람이 불고 수심이 얕고 바위가 많은 곳이다. 절벽에 부딪친 바람이 돌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 자료출처:구글 지도_ 보자도르 곶 위치

이곳을 지난다 해도 조류와 바람이 남쪽으로 강하게 흐르므로 거슬러 되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 남쪽은 펄펄 끓는 적도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이 보자도르 곶(Cabo Bojador)은 그야말로 항해자의 무덤이었으며, 오랫동안 바다의 가장자리이자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엔히크의 명령은 일관되었다. “보자도르 곶을 넘어라!” 1434년 여름 수십 번 실패 끝에, 최초로 보자도르 곶을 넘어 항해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에아네스(Eanes)라는 선장이었다. 

▲ 자료출처:ANGELUCCI, CUCARI [SHIP] GREENWICH HOUSE 1977_ 캐러벨선(Caravel)

끓는 죽음의 바다를 넘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캐러밸선(Caravel, 돛대를 여러 개 세우고 큼직한 삼각돛을 배치한 범선) 덕분이었다. 이 배는 다우삼각돛을 개량한 라틴세일을 달고 있었는데 이것을 미세하게 조종하여 지그재그 형태로 역풍을 거슬러 바다의 끝에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인도로 가는 1000년의 바다 장벽이 극복되는 순간이었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_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 목판본(1482)

엔히크 왕자가 아프리카를 남쪽으로 돌아 인도로 향한 반면 스페인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Columbus)는 서쪽으로 키를 잡았다.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다보면 지구를 돌아 동쪽의 나라가 나오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판단으로는 아시아대륙이 동쪽으로 넓게 뻗어 있으므로 대서양은 넓지 않고 따라서 항해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레콩키스타(Reconquista, 포르투갈어로 ‘재정복’을 뜻하는 말로 718년~1492년,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가 완성된 해인 1492년 8월 3일 출항한 1차 항해는 놀랍게도 불과 33일 만에 카리브해에 도착했다. 산타마리아호 등 3척이 계절풍이 부는 위도 지역을 따라 곧바로 서쪽으로 전진한 결과였다. 이처럼 콜럼버스는 바람의 여신이 그와 함께 하는 행운이 있었기에 항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항해 시대는 계절풍을 발견한 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정교한 돛이 발명된 이후에 이루어졌다. 신대륙의 발견은 바람을 읽고 바람을 다스리는 인류의 오랜 지혜가 빚어낸 결과였고 위험을 마다않고 바다로 뛰어든 선대 항해가의 유산이었다.

바다에서 바람의 영향을 극복하고 항해의 주동력을 기관으로 대체한 것은 19세기의 일이었다. 1783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증기선을 운항하였지만 실용화되지 못했다가, 1807년 미국의 로버트 풀턴이 외륜식 증기선 ‘클러몬트호(Clemont)’를 건조하여 허드슨 강을 운항하였다. 그 후 불과 50년이 지난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은 검은 증기선(黑船, 쿠로후네)을 끌고 와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켰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_ USCGA tallship USCGC Eagle

과거 바람과 돛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선조들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유럽 항해가의 후예들이 있는데, 바로 미국 코네티컷주 뉴런던에는 미국 해양경찰 대학(U.S. Coast Guard Academy)이 그 들이다. 학생들의 항해실습용으로 사용되는 USCGA 교육훈련함인 이글호(Eagle)는 3개의 긴 돛대와 커다란 돛을 가지고 있다. 엔진이 보편화된 오늘날 수 백년 전에나 있었던 대항해 시대의 구물을 자랑스럽게 운용하는 까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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