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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의 ‘알·신·잼·sea' (5)-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다섯 번째 -
고명석 해양경찰 교육원장  |  baccronews@bacc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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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4  0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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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편집자 주-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바다를 향한 집념의 화신, 러시아 '표트르 대제' 이야기①

러시아를 가 본 적이 있는가. 바이킹의 일족이 동유럽에 세운 슬라브족의 나라.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점령하지 못했던 동토의 땅. 추위만큼 강렬한 독주인 보드카를 즐기는 나라. 서쪽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해가 질 때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해가 뜨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나라...

오늘의 러시아가 있기까지 바다로 진출하기 위한 어느 러시아 황제의 집념과 노력이 있었으니.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를 통해 근대 러시아의 기반을 다진 위대한 군주 표트르 대제!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 (자료출처:위키디피아) 고드프리 넬러(1646~1723)가 1698년에 그린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

1672년 5월 30일 러시아 황궁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표트르 1세(Pyotr I)’가 태어난 것이었다. 4살이 되던 해인 1676년 정치적 암투로 인해 황궁에서 쫓겨나 인근 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표트르는 인접한 외국인 집단거주지에 가서 자주 놀곤 했다. 당시 러시아는 외국인에게 폐쇄적이어서 외국인 집단거주지를 만들고 그곳에만 거주시켰다. 이러한 유년기의 경험은 나중에 유럽을 모델로 러시아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근대화와 국력 강화를 추진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그의 나이 10세였던 1682년 표트르는 이복형인 이반과 공동으로 차르(러시아의 황제를 일컫는 용어, 로마의 Caesar에서 유래함)에 즉위하였다. 1696년 지능이 떨어졌던 이반이 죽고 그를 대신해 섭정을 하던 누나 소피아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표트르는 단독 황제가 되었다.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이후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 개척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고 과학기술이 발달하였다. 반면 러시아는 경제, 문화, 과학 면에서 선진 유럽 국가들에 비해 100년가량 뒤떨어진 상태였다.

러시아는 중세의 상징이던 농노제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슬라브족의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는 폐쇄된 유럽의 변방이었다. 러시아의 동방정교는 유럽의 과학 기술이 러시아 전통과 문화를 어지럽힐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대다수 러시아인은 유럽의 선진 문화를 배척하는 분위기였다. 덩치는 컸지만 아직 힘이 없는 북극곰이었다. 

하지만 젊은 황제 표트르는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 러시아를 사랑했다. 러시아를 유럽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국가이익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였다. 그리고 몸소 실천하는 실용주의자였다. 그 스스로가 전쟁에서 병사이며 지휘관으로 활약했었고 포수, 선원, 조선소 노동자의 생활을 경험했다. 그는 말했다. “보라 형제여! 나는 러시아의 황제다. 그러나 나의 손은 굳은살 투성이다. 이는 모두 그대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는 키가 2m13cm에 이르는 거구였으며 하루 종일 일하는 일벌레였다. 다양한 분야에 능력을 발휘했던 그는 항해술, 조선술, 군사운용술, 석공, 목공, 철공 등에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보였다. 그리고 관심 분야도 넓었다. 검술, 승마 등 운동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외과술, 치과술에도 관심이 있어 신하로부터 실습용으로 뽑은 치아 1포대를 소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황제가 된 표트르는 러시아의 낙후된 현실에 번민했다. 그는 고루한 슬라브족의 전통과 관습을 버리고 유럽의 선진제도를 모델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실천에 돌입하였다.
1697년 20대의 젊은 러시아 황제는 신분을 숨기고 유럽의 선진 문물을 공부하러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1000대 썰매가 끄는 250명의 사절단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 (자료출처:위키디피아) 네덜란드에서 조선술을 배우고 있는 표트르(

당시 선진국이었던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을 15개월 동안 방문하였다. 황제는 ‘미하일로프’라는 가명을 쓰면서 신분을 숨겼다. 평범한 마을의 좁은 방을 빌려 숙식하였다. 표트르는 혼자 성벽을 조사하다가 경비병의 총에 맞을 뻔한 적도 있고, 암스테르담 동인도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목재를 나르기도 했다. 사절단장은 신하에게 맡기고 방문국 마다 장교, 조선공, 건축공 등으로 신분을 바꾸었다. 황제로서 의례적인 외교절차에 따른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의 배움에 대한 의지는 황제의 신분보다 중요했다. 

그런 그는 “나는 학생이며 선생들을 찾고 있다”라고 새겨진 인장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영국에 갔을 때 선진화된 해군 함정을 둘러보고는 “러시아의 차르보다 영국의 해군 제독으로 지내는 삶이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사절단은 공장, 작업장, 병원, 군사시설, 천문대, 해부학 교실, 건축, 운하, 대학, 무기고, 학술원 등 거의 모든 선진 시설을 둘러보았다. 그는 각국을 돌며 다양한 공부를 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에서의 관함식, 선박 건조에 관심이 많았다. 표트르가 조선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강력한 해양력을 만들어 흑해와 발트해 등 바다를 누비려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1697년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온 표트르는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직접 신하들의 수염과 긴 러시아식 옷을 가위로 잘랐다. 수염을 깎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수염세를 물렸다. 당시 신의 형상에 따라 자란 수염을 자르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 (자료출처:런던 국립미술관) 귀족의 수염을 자르는 광경


또한 러시아 최초의 해군을 창설하고 러시아 과학원도 설립했다.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박물관과 도서관도 지었다. 수공업 공장을 대폭 증설하였으며, 포병 및 해양학교도 설립하여 기술자를 길러내기 시작했다. 

   
▲ (자료출처:옐로우의 연도별 세계지도 “yellow.kr”) 18세기 러시아의 해상 진출

한편 그는 바다를 진정으로 사랑한 군주였다. 일생에 걸쳐 표트르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바다에 대한 열망이었다. 바다를 통해 부국을 이룬 유럽 문명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내륙국이었던 러시아의 약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러시아가 살 길은 바다로 나아가는 길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갈 길은 막혀 있었다. 북극해와 태평양은 얼어붙은 바다라서 항구로 적합지 않았고, 발트해로 향하는 통로는 스웨덴이, 흑해로 가는 길목은 튀르크가 막아서고 있었다. 

이제 흑해나 발트해의 관문을 확보하는 것이 러시아 발전의 관건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실천했던 표트르는 바다를 향한 창을 열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먼저 남쪽의 흑해였다. 몇 번 실패 끝에 1696년 흑해 연안의 아조프항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흑해로 진출하기에는 튀르크 세력이 너무 강했다. 

이번에는 관심을 북쪽의 발트해로 돌렸다. 1700년~1721년에 걸쳐 군사 강국이던 스웨덴과 북방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위해 교회의 종을 녹여 300개가 넘는 대포를 만들고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하기도 했다. 오랜 전쟁 끝에 발트해로 진출하는 네바강 유역을 확보하였다. 

   
▲ (자료출처:Daum 백과) 네바 강변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을 구상하는 표트르 대제


마침내 바다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관문을 확보한 것이다. 그가 그토록 갈망해 왔던 ‘천국으로 가는 열쇠’ 상트 페테르부르크 건설이 눈앞에 다가왔다. 21년간의 피흘리는 전쟁으로 확보한 황량한 강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표트르는 끓어오르는 감회를 억누룰 수가 없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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