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열 번째 -

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편집자 주-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신비하고 경이로운 생명체 고래

“물에서 헤엄치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가장 크게 창조하신 바다의 괴물, 리바이어던……” 밀턴의 《실락원》 중에서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Pieter Lastman_고래 뱃속에서 나오는 요나

바다의 신사 고래는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거대한 몸집은 인간을 매료시키는 한편 공포와 경이의 대상이 되기도 해왔다. 그리하여 때로는 인간의 친구로 때로는 야수로 묘사된 고래의 전설과 신화가 전해져 왔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에 나오는 ‘요나(Jonah)’ 이야기나 ‘리바이어던(Leviathan) ’ 이야기이다. 또 아일랜드 수도사 브랜던의 탐험기에도 고래가 등장한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일 것이다. 

소설 《모비 딕》과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실제 일어났던 포경선 에식스호(Essex) 침몰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820년 가을 남태평양의 한가운데서 고래잡이를 하던 포경선 에식스호는 성난 향고래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살아남은 21명의 선원들은 3척의 보트에 몸을 싣고 장장 94일간 7,200km를 표류했다. 선원들은 거북과 사체를 먹으며 버티다 종국에는 제비뽑기로 동료를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결국 21명중 8명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한때 포경선 선원이었던 멜빌이 생존자로부터 구전하여 만든 소설이 《모비 딕》이다. 

고래는 경이의 대상이며 신비한 습성과 생태를 가지고 있다. 고래는 허파로 호흡하며 돼지, 기린, 낙타 등 발가락이 짝수인 유제류와 조상을 같이 한다. 수 백 만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물고기의 외양이 되었지만 물속에서 새끼를 낳는 유일한 포유류이다. 또한 포유동물에서 볼 수 있는 귀, 남성 성기, 젖꼭지 등 돌출 부위는 몸속으로 들어갔다. 한편, 앞다리는 지느러미로 뒷다리는 꼬리로 변하였다. 물고기와 달리 수평의 꼬리를 가졌고 육상 동물이 뛰는 것과 같이 꼬리가 아닌 몸통을 움직여 헤엄친다. 또한 코(분수공)가 정수리에 붙어 물속에서 숨쉬기가 쉽다.

고래는 보통 수염 고래와 이빨 고래로 분류된다. 수염 고래는 이빨대신 입안에 수염(baleen)이 있다. 수염은 위쪽 잇몸이 각질화하여 유연한 띠모양으로 발달한 기관이다. 이들은 물과 함께 플랑크톤이나 작은 어류를 흡입한 후 혀를 닫아 물은 내보내고 나머지를 수염으로 걸러 먹는다. 대왕 고래(blue whale), 참 고래(fin whale) 등 대부분이 대형종이다. 

반면 이빨을 가진 고래는 원추형의 이빨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고 빨리 헤엄친다. 수염 고래의 분수공이 2개인 반면 이빨고래의 분수공은 1개뿐이다. 향고래(sperm whale), 범고래(killer whale), 각종 돌고래 등 60종 이상이 있다. 

고래는 저마다 특이하고 신비한 습성이 있다. 사람보다 작은 고래 바퀴타, 거대한 생명체 대왕고래, 다른 고래를 잡아먹는 범고래, 북극의 유니콘 일각고래, 눈처럼 새하얀 흰 고래, 처녀를 유혹하는 전설의 분홍 강돌고래......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향유고래, 일각고래, 대왕고래, 범고래

이들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지닌 존재들이다. 45억년 지구역사상 가장 큰 생명체인 대왕고래는 길이 33m, 200톤에 육박한다. 코끼리 40마리, 성인 2,667명에 해당하는 몸무게이다. 수염만 1톤이며 혀의 무게가 하마와 비슷한 2.5톤이다. 심장은 소형 자동차만 하고 눈 크기가 농구공만 하다. 새끼는 첫 7개월 동안 매일 90kg씩 늘어날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바다의 늑대’로 불리는 범고래는 바다에서 최강의 포식자이다. 이들은 높은 지능을 지니고 있고 시속 55km로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주로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기발한 사냥법을 선보인다. 물에서 모래사장으로 돌진하여 물개를 사냥하기도 하고 여러 마리가 파도를 일으켜 얼음위에 있는 물범을 물속으로 떨어뜨린 후 잡아먹는다. 또한 다른 고래를 집단으로 공격하는데 자기보다 큰 고래 위로 올라타 등을 짓눌러 익사시킨다. 또 먹이인 바다사자를 꼬리로 하늘 높이 던지며 노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향고래는 《모비 딕》에 등장하는 고래다. 향고래는 미국 포경업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주인공이다. 그 이유는 향고래의 거대한 머리에 경랍 기관이 있어 경뇌유(spermaceti)가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이 기름은 양질의 양초 재료로서 비싸게 팔렸다. 게다가 향고래 수컷의 내장에서만 발견되는 용연향(ambergris)은 최고급 향수 원료로서 동일한 무게의 금과 맞먹는 가치가 있었다. 요즘도 해변가를 산책하던 관광객이 우연히 돌덩이처럼 생긴 용현향을 발견하여 횡재를 했다는 뉴스를 요즘도 들을 수 있다.  

북극에 서식하는 일각고래 수컷은 머리에 유니콘의 뿔이 달렸다. 어금니가 비정상적 크기로 자란 것인데 과거 금값보다 훨씬 비싸게 팔린 사치품이었다. 이것은 얼음을 뚫거나 먹이를 찌르고 의사소통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때로는 암컷을 두고 칼싸움하듯이 부딪치며 휘두르기도 한다. 북극의 얼음 사이 수면위로 외뿔을 들어 올리고 헤엄치는 일각고래 무리를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인 듯한 느낌이 든다.  

한편 인간은 오랫동안 고래를 사냥해 왔다. 처음에는 우연히 해변가에 좌초된 고래를 발견해 이용했지만 점차 사냥에 나섰다. 북극점 가까이에 사는 이누이트족(innuit)은 옛날부터 고래를 사냥했고 지금도 사냥하고 있다. 이들은 7~8인이 탈 수 있는 우미악(umiak)이라는 배를 나눠 타고 북극의 얼음 바다를 누비며 작살을 던졌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잡이 배도 우미악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냥한 고래 고기는 식량으로, 기름은 불을 밝히는 용도로, 뼈는 집을 짓거나 사냥도구를 만드는데 이용하였다. 

▲ (자료출처:허밍턴포스트) 포획한 참고래 옆에 서있는 19세기 노르웨이 포경선원

최초로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9세기 바스크인(Basque)이었다. 이들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 비스케이만에서 고래를 잡았다. 가을이 되면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설치된 망루에 감시원을 배치했다. 고래를 발견하면 종을 울리거나 불을 피워 이 사실을 알리고 곧바로 10명이 승선한 작은 배를 띄워 고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래에 접근하면 부표가 달린 작살을 수없이 던져 고래를 죽였고 해안으로 끌고 왔다. 고래 고기, 지방, 수염 등은 스페인과 프랑스로 팔려나갔고 이로 인해 빌바오 등 해안도시는 활황을 이루었다. 

17세기 이후 네덜란드, 노르웨이, 영국이 고래잡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바스크인 작살잡이를 고용하여 노르웨이해, 그린란드해, 북극해를 누볐다. 얼음이 뒤덥힌 황량한 스발바르 제도에 최초로 포경기지가 세워지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1630년대 이곳은 300척 가량의 포경선과 1만 2천~8천명의 선원이 있었다. 고래 기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비싸게 팔려 나갔다.

고래를 잡고 해체하여 고래 기름을 얻는 과정은 이랬다. 노를 젓는 작은 배로 고래를 잡으면 모선 옆에 결박하고 수면에서 해체했다. 사각띠 모양으로 잘라 낸 지방을 밧줄에 묶어 배 위로 올려 큰 쇠솥에 넣고 녹였다. 녹은 지방을 걸러서 액체의 고래기름 상태로 나무통에 저장했다. 부산물 중에 고래 수염은 코르셋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지만 고래 고기와 뼈는 바다에 그대로 버려졌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향유고래를 포획중인 포경선_가느레이

17세기 말부터는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의 뉴잉글랜드에서 포경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바스크인 방식으로 연안에서 수염고래나 북극고래를 잡았다.  1712년 고래잡이를 나갔던 한 포경선이 돌풍을 만나 해안에서 멀어졌다가 향고래 떼를 만났다. 그때까지도 이빨이 있고 떼를 지어 다니는 향고래는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배가 한 마리를 잡아오면서 향고래가 품질 좋은 기름을 다량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것은 포경의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790년부터 미국의 포경선은 이제 혼곶을 돌아 태평양까지 진출했다. 1835년부터 6년 동안 미국에는 포경선이 203척에서 421척으로 늘어났으며 30곳이 넘는 포경항이 있었다. 세계 최대 포경의 전진기지였던 뉴잉글랜드 낸터킷항과 뉴베드퍼드항은 포경선과 고래처리 공장으로 가득했다. 19세기 미국의 포경은 이제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인류가 석탄과 석유를 사용하기 전이었던 당시 포경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일본을 개항시켰던 이유중에는 포경선의 중간 보급기지를 만들어 미국 포경산업을 지원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1864년 물범 사냥꾼이었던 노르웨이의 스벤드 포윈이 모선에서 포를 쏘아 고래를 공격할 수 있는 작살포를 발명하였다. 작살이 고래의 살에 박히면 작살 끝이 별모양으로 펼쳐졌다. 이 때 황산을 채운 작은 유리병이 깨지면서 화약에 불이 붙고 그것이 폭발함으로써 고래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 이전까지는 모선에서 띄운 작은 배를 타고 고래를 뒤쫓아 사람이 작살을 꽂는 방식이었다. 이제 대왕고래와 참고래처럼 크고 빠른 고래들도 포획 대상에 포함되었다. 죽은 후 가라앉는 고래도 작살에 연결된 줄을 당기면 쉽게 인양할 수가 있었다. 파도치는 수면위에서 고래를 해체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발명은 고래잡이 기술의 혁신을 일으켜 포경의 산업화 시대를 열었지만 상대적으로 빠르게 헤엄치는 대형종을 멸종위기로 내몰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래들의 고향인 남극 바다에는 포경포를 갖춘 포경선과 거대한 가공선이 가득하게 되었다. 이들 움직이는 고래 공장은 한 해만 357척의 포경선과 23척의 가공선이 대왕고래 372마리, 혹등고래 318마리, 참고래 1만 9천 마리, 보리고래 1만 3천 마리, 향고래 2만 9천 마리 등을 학살했다. 이런 학살은 수 십 년간 계속되었고 상업 포경의 경제적 이윤이 바닥에 이르자 고래를 잡던 포경국이 마치 선심 쓰듯이 개체수를 논하기 시작하였다. 

1946년 19개 포경국이 모여 국제포경위원회(IWC, Inernational Whaling Commision)를 창설하였다. 고래새끼 보호, 포획 수 제한, 멸종 위기종의 포획 금지 등을 논의하였지만 위원회 결정을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 애초부터 위원회 회원국은 대부분 포경국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긴 꼴이었다. 회원국의 진정한 관심은 고래 생태나 보존이 아니라 상업포경 재개를 위해 적정 개체수를 관리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초기에 고래자원을 감안하여 전체 포획량을 정하고 포획했다. 고래수가 줄자 다시 특정 해역에서 특정 종을 포획 금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1986년부터는 포경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고래를 먹는 문화가 있는 국가들은 상업포경 재개를 주장하였다.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랜드가 그렇다. 일본이나 아이슬란드는 과학적 조사를 위한 포경을 계속하고 있는데 일본은 2018년에만 333마리를 포획하였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조사’ 차원의 포경을 고래 보호를 위한 생태조사 쯤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상업포경을 위한 개체수를 조사하는 것이지 생태조사와는 거리가 멀다. 죽이지 않고도 가능한 조사이지만 굳이 포획하는 이유는 불문가지이다.  

▲ (자료출처:시공사) 고래를 해체중인 19세기 일본어촌마을

일본은 작년 12월 국제포경위원회를 공식 탈퇴했다. 그리고 금년 7월 1일부터 31년 만에 상업포경을 재개했다. 전통적인 고래 잡이 항구인 홋카이도 구시로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에서는 포경을 축하하는 출항식까지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울산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포경이 1985년 11월부터 전면 금지되었지만 고래를 먹는 문화는 아직 남아있다. 지금은 혼획(다른 고기를 잡으려 쳐놓은 그물에 고래가 걸려 죽은 경우)이나 좌초(고래가 죽어서 해변에 밀려오는 것)된 고래만 해양경찰의 유통증명을 받아 합법적으로 유통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요는 많은 반면 공급이 제한되자 고래고기 가격이 폭등, 한 마리에 수 천 만원에 팔리면서 ‘바다의 로또’라 불리고 있다. 더불어 은밀하고 불법적인 포획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설 《모비딕》은 한쪽 다리를 앗아간 교활하고 포악한 고래를 죽이려는 불굴의 인간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위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고래를 죽이는 인간을 비꼬는 메타포도 담겨있다. 죽어가면서까지 모비 딕을 공격하는 에이햅 선장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보여줬다면 모비 딕은 자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으로 피쿼드호를 공격한 것이다. 

오늘날 고래 기름은 이미 석유로 대체되었고 고기를 얻기 위해 많은 소나 돼지를 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고래 고기를 먹는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고 이웃 일본은 식용으로 수많은 고래를 잡는다. 고래 기름의 상업적 가치가 사라진 이 시대에 단지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만으로도 경이롭고 신비한 생명체를 죽일 필요가 있을까?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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