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열 아홉 번째 -

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편집자 주-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신유박해가 낳은 조선의 물고기 박사, 정약전과 김려

이제 정약전의 삶과 물고기 연구에 대해 살펴보자. 정약전·약용 형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남양주 양수리(두물머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형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흑산도와 강진으로 각각 유배되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와 우이도를 오가며 유배생활을 했고, 1816년 우이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정약전은 유배생활 동안 흑산도 물고기를 연구하여 ≪자산어보≫를 지었다. 이 기록은 ‘玆山(흑산도)’지역의 어보인데, 어류 40, 조개류 12, 잡류 4 등 56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어류는 인류(비늘 있는 어류)와 무린류(비늘 없는 어류)로 나누었고, 연관 종까지 수록하고 있어 방대한 종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노력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다른 조력자가 있었다. 한 명이 흑산도 섬 소년 ‘장창대’였다. 창대는 흑산도 근해의 물고기 종류와 속성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던 어부였다. 정약전은 도움을 준 창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그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나는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 보았다. 그 목적은 어보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 말이 다르므로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소년이 있었다.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물고기와 물새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소년과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 연구를 했다.

- ≪자산어보≫ 중에서 -

▲ (자료출처:흑산도 자산문화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약전의 초상화(좌)와 자산어보 본문(우)

다른 한 명은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청이다. 정약전이 죽은 후 ≪자산어보≫는 섬 집의 벽지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유배에서 풀린 정약용이 이를 수거하여 제자인 이청으로 하여금 필사케 하고 중국 문헌들을 고증해 방대한 주석을 달게 하였다. 그래서 ≪자산어보≫ 내용에는 ‘청안’이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그 뒤에 따라오는 내용은 이청이 기록한 것이다. 즉, 지금 우리가 접하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 저작인 셈이다. 몇 부분을 소개해 보려 한다. 

≪자산어보≫의 첫 페이지는 대면어(大鮸魚)가 장식하고 있다. 대면은 돛(돗)돔인데 강태공들에게 전설로 불리는 거대한 심해어이다. 길이 2m에 300kg까지 자란다. 수 백 미터 수중 암초에 서식한다. 괴력의 돛돔에 관한 기록을 보자. 『형상은 민어와 유사하나 색은 황흑이다. 맛은 민어보다 농후하다. 큰 놈은 길이가 10자(1자는 30cm) 남짓이다. 6~7월에 낚시를 드리우면 이를 상어가 삼키고, 발버둥치는 상어를 대면어가 삼킨다. 상어의 뾰족한 지느러미 뼈가 대면어 창자를 찌르면 이를 뺄 수 없다. 어부가 낚시를 올릴 때는 힘으로 대면어를 제어할 수 없다.』 

오적어(烏賊魚)는 갑오징어를 이른다. 『몸통은 타원형이고 머리는 작고 둥글며 머리아래 목이 있다. 목 위에 눈이 있고 머리끝에 입이 있다. 입 둘레에는 다리가 8개 있는데 낚싯줄처럼 가늘다. 다리에는 말발굽처럼 생긴 국화꽃이 있으니 이는 다른 것에 달라붙기 위한 것이다. 주머니에는 먹물을 담고 있는데 오적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색이 번들거려 윤기가 난다. 다만 오래 지나면 글씨가 떨어져 나간다. 오적어라 이름붙인 이유는 까마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적어가 물 위로 뜨면 날 던 까마귀가 죽었다고 여겨 오적어를 부리로 쫀다. 이때 오적어는 까마귀를 말아 잡고서 물에 들어가 먹는다.』 오징어의 다리에 붙은 빨판을 국화꽃에 비유한 것이 시적이다. 또 오적어로 명명하게 된 유래도 흥미롭다.

분어(鱝魚)는 홍어를 말한다. 『몸통은 연잎과 비슷하다. 코는 등 위에 있지만 입은 가슴과 배 사이의 바닥에 있다. 꼬리는 돼지 꼬리 같은데 꼬리의 등마루에 가시가 불규칙적으로 나 있다. 수컷은 음경이 둘 있는데, 음경은 뼈이고 그 형상은 굽은 칼과 같다. 회·국·어포로 좋다. 나주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긴다. 장에 숙환이 있는 사람이 삭힌 홍어를 가져다 국을 끓여 먹으면 뱃속의 더러운 것을 몰아낼 수 있다. 또 술기운을 가장 잘 안정시킬 수 있다.』 흑산도 하면 먼저 떠오르는 물고기가 홍어이다. 코가 얼얼하도록 삭힌 홍어 삼합에는 막걸리가 어울린다. 애주가의 다음날 아침 해장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홍어 애탕이 제격이다. 

▲ (자료출처:국립수산과학원) ‘자산어보’에 소개된 어종들

그 밖에도 ≪자산어보≫에는 물고기를 묘사한 재미있는 표현이 많다. 애초에 정약전은 물고기를 글로 묘사하고, 그림도 함께 그려 넣어 생생하게 표현하려 하였다. 하지만 동생 정약용이 이를 만류하여 글로써, 마치 눈앞에서 물고기를 보는 듯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짱뚱어의 튀어나온 눈 모양을 철목어(凸目魚)로 이름 지었다거나, 불가사리의 별 모양 다리를 보고 단풍잎에 비유하여 풍엽어(楓葉魚)로 부른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아귀가 낚싯대 모양의 미끼를 드리우다가, 다른 물고기가 다가오면 미끼를 입 쪽으로 당겨 덥석 잡아먹는 장면을 눈으로 보는 듯 그리고 있다.  

말미잘에 대한 표현은 다소 징그럽다. 서양에서는 물결을 따라 하늘거리는 말미잘 촉수가 꽃처럼 보여 ‘바다의 아네모네(sea anemone)’라 부른다. 반면 정약전은 말미잘을 설사한 사람의 탈장된 창자로 묘사하면서 미주알(未周軋)이라고 이름 붙였다. 미주알의 사전적 의미는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그래서 ‘미주알 고주알 따진다’는 것은 창자 끝까지 속속들이 살펴본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소개한 ≪자산어보≫와 ≪우해이어보≫는 쌍벽을 이루는 역작이다. 그러나 아무런 연관성 없이 별개로 만들어졌다. 김려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개성을 가졌고, 정약전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품성을 지닌 것처럼, 책들도 그대로 닮아 있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믿지 않았거나, 신유년의 박해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기록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약전과 김려는 그들이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고 연구했던 물고기가 예수님을 상징하는 은밀한 표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바끄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