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스물 일곱 번째 -

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편집자 주-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적보다 두려웠던 침묵의 암살자, 괴혈병

비타민 부족이 유령선을 만들다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해적 영화에는 유령선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안개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배의 갑판에 올라가 보면 살아있는 사람은 없고 사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이처럼 유령선은 사체를 실은 채 파도에 밀려 바다를 정처 없이 떠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유령선은 실제 있었다. 항해 중에 배를 운항하는 선원이 모두 죽는 일은 영화 속의 장면만은 아니었다. 그 범인은 바로 괴혈병(scurvy)이었다.   

▲ (자료출처:flickr.com)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호”

인체에는 콜라겐이라는 단백질 조직이 있다. 콜라겐은 인체에 흔한 생체 고분자 단백질로서 삼중 나선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이 조직은 몸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고 세포의 분화, 부착, 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부가 탱탱하게 유지되는 것도 콜라겐 때문이다. 

그런데 비타민 C가 콜라겐 삼중 나선 구조를 단단하게 연결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즉, 모든 동물 몸체를 형성하고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비타민 C다. 거의 모든 동식물은 내부적으로 이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박쥐, 기니피그, 카피바라 같은 일부 포유류,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은 이것을 합성하지 못한다. 그래서 합성하지 못하는 종들은 음식을 통해서 비타민 C를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 C 부족으로 괴혈병이 생긴다는 사실은 오늘날 누구나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비타민 C가 부족하면 콜라겐 결합이 느슨해지면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괴혈병이다. 초기에는 무기력, 나른함, 우울감, 식욕부진 등이 일어난다. 그 후 혈관과 잇몸이 약해지고 출혈이 생긴다. 피부가 탱탱함을 잃으면서 손으로 눌러도 피부에 쑥 들어간 자국이 그래도 남는다. 계속 비타민을 섭취하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괴혈병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처럼 갤리선으로 연안을 짧게 항해했던 때는 괴혈병이 없었다. 그러다가 8세기~11세기의 바이킹이 나타나 유럽 곳곳을 약탈하였다. 그들은 장기 항해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혈병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괴혈병을 뜻하는 단어‘scurvy’는 바이킹인 노르웨이어에서 유래하였다. 또 13세기 십자군 전쟁 때도 괴혈병이 발병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년 이상 계속된 전쟁에서 지중해를 오가는 장기 항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거리 항해의 어두운 동반자, 괴혈병

그런데 괴혈병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세계의 큰 바다가 연결되었고, 장기간 항해가 일상화되었다. 선원들은 몇 개월에서 몇 년을 배 위에서 생활해야 했다. 

당시 선상 음식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장기 항해를 위해 버터, 치즈, 빵 등을 준비해도 금방 상해버렸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던 주식은 건빵과 소금에 절인 고기 정도였다. 식수도 장기화된 항해로 오염되기 일쑤였고, 이 대신 술만 먹는 일도 허다했다. 선원들의 주식이었던 이런 음식에 비타민이 들어있을 리 없었다. 이렇게 선원들은 열악한 거주 환경에서 생활했으며, 오랫동안 신선한 야채를 먹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괴혈병이었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장거리 항해로 인한 “괴혈병”

대체로 괴혈병은 배가 항구를 떠난 지 6주가 지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험한 파도나 해적과의 전투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뱃사람조차 원인 모를 괴질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렇게 대항해 시대에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병은 페스트도, 결핵도 아닌 괴혈병이었다. 실제로 배 위에서 괴혈병으로 죽는 사람이 난파나 전투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항해가들도 괴혈병에 시달리기는 매한가지였다. 바스쿠 다 가마는 유럽인 최초로 뱃길을 통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해 도착했던 인물이다. 그는 149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인도를 왕복하였다. 1차 항해 때 그의 일행이 희망봉을 돌았을 때, 170명의 선원 중 100명이 벌써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498년 8월 유럽으로 돌아오는 항해 동안 선원의 반을 잃었고, 나머지 선원들도 괴혈병에 시달렸다. 

최초로 세계 일주를 했던 마젤란 일행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덥쳤다. 1519년 8월 스페인을 출발할 당시 함대는 다섯 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으로 구성되었었다. 그런데 세계를 일주한 후 1522년 배 한 척에 돌아온 일행은 인디오 세 명까지 포함하여도 21명이었다. 마젤란 자신은 필리핀에서 전투 도중 사망했지만, 대부분 선원은 귀환하는 배에서 괴혈병으로 죽어갔다. 

마젤란, 드레이크에 이어 세 번째로 세계 일주를 했던 영국의 조지 앤슨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함대는 1740년에서 1744년까지 아메리카 식민지 원정을 위해 파견되었다. 함대에는 군인 등 1,955명이 타고 있었는데, 4년의 항해 동안 634명 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중 전투 손실은 네 명뿐이었고 열병이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320명이었다. 그리고 절반가량인 997명은 모두 괴혈병으로 죽었다. 
세기의 라이벌 탐험가였던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대결에서도 괴혈병이 승부를 갈랐다. 아문센과 스콧은 1911년 1월 각각 남극에 도착했다. 이들은 남극점을 탐험하기에 앞서 방한복, 식량, 운송수단을 준비했다. 그런데 모든 준비방식에서 양 탐험대는 큰 차이를 보였다. 

▲ (자료출처:Google) “페미컨”

영국 해군 장교였던 스콧은 설상차, 통조림 등 영국의 첨단 방식으로 준비했다. 반면 고향인 노르웨이에서 극지 원주민을 수없이 접했던 아문센은 이누이트 족 전통방식으로 모든 것을 준비했다. 식량도 극지방 현지인이 주로 먹는 페미컨(Pemmican, 빻은 육포에 곡식의 가루나 열매를 섞은 후 지방으로 반죽하여 굳힌 음식) 같은 전통 보존식품으로 준비했다. 현지에서 팽귄과 바다표범을 잡아 신선한 고기도 비축했다. 

준비방식의 차이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아문센 일행은 원주민식 음식을 먹고 질병 없이 남극점을 정복하고 전원 생환했다. 반면 스콧 팀은 오랫동안 신선한 음식과 비타민 C를 섭취하지 못해 괴혈병에 시달렸고, 전원이 사망하였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만이 괴혈병을 치료한다

대항해 시대에 수많은 선원이 괴혈병으로 죽어갔다. 하지만 당시 과학 수준으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괴혈병은 커녕 비타민이라는 개념조차 몰랐기 때문에 병이 들면 해결책이 없었다. 미신에 따라 주술행위를 하거나 민간요법을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배를 깨끗하게 하고 선원들을 자주 씻게 해 병을 막아보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다른 병들은 사라졌지만 유독 괴혈병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유럽에서 괴혈병의 원인조차 모르고 있을 때 놀랍게도 지구 다른 편에서는 치료법을 알고 있었다. 5세기 원거리를 항해했던 중국인은 배 안에 생강을 재배하여 먹고 병을 예방하였다. 또 16세기 북아메리카에 유럽인이 도착했을 때 그곳 원주민은 솔잎을 우려낸 물을 마시게 하여 괴혈병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 (자료출처:flickr.com) 제임스 린드(James Lind) 초상화

유럽에서 치료법을 처음 제시한 이는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이었던 제임스 린드(James Lind)였다. 그는 외딴 섬에 버려진 괴혈병 환자가 풀만 뜯어먹었는데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듣고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괴혈병 환자를 그룹별로 나누고 특정 음식을 먹인 뒤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마침내 레몬과 오렌지가 괴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1753년에 학계에 발표했다. 하지만 괴혈병이 상한 고기를 먹어서 발병한다는 오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영국 해군은 그의 연구 결과를 무시했다. 해군에 레몬이나 라임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 50년이 지나서였다. 
그런데 제임스 린드의 발견에 주목한 탐험가가 있었으니, 뉴질랜드 5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산 이름을 남긴 캡틴 쿡(Cook)이었다. 그는 1768년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측정하는데 필요한 관찰을 하기 위하여 태평양에 파견되었다. 

그는 괴혈병이 신선한 과일, 채소를 먹으면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에 옮겼다. 항해 때마다 채소와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독일에서 먹는 신맛이 나는 절임 양배추)를 채워 넣고 항해했고 선박 내부를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리하여 세 차례의 긴 항해에도 괴혈병으로 죽는 선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덕분에 하와이를 처음 발견해 ‘샌드위치 섬’이라 명명하였고,  뉴질랜드와 태평양의 많은 섬을 발견하였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그런데 캡틴 쿡이 선원에게 자우어크라우트를 먹게 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처음에 선원들은 익숙하지도 않고 맛도 없는 이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쿡은 아이디어를 냈다. 사관 식탁에만 자우어크라우트를 올리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슬쩍슬쩍 보여주었다. 그러자 선원들은 자기들도 달라고 격렬히 항의했고, 결국 모두가 먹게 되었다고 한다. 

캡틴 쿡의 영향으로 1795년부터 영국 해군은 병사들에게 레몬이나 라임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괴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때부터 이웃 나라 해군은 영국 해군을‘라임을 먹는 것들’이란 뜻의‘라이미(limey)’라 불렀다. 레몬이나 라임을 먹을 때 신맛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데 이것을 표현한 조롱섞인 별명이다. 영국 해군이 라임을 제공하자 독일 해군은 자우어크라우트를 제공했는데,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병사를 ‘크라우트(kraut, 양배추)’라 불렀다고 한다.

요즘 우리 민족을 가리켜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왔을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간편하고 빠른 배달 음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배달 음식을 너무 자주 먹다가는 괴혈병에 걸릴 수도 있다. 배달 음식 대부분은 패스트 푸드나 육식 위주 식단이기 때문이다. 괴혈병은 바다에만 있는 질병이 아니다. 오랫동안 야채나 과일을 기피하면 육상에서도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바다에 나가 항해하는 것도 아니면서 괴혈병에 걸린다면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배달 음식도 좋지만 야채와 과일은 꼭 챙겨 먹자. 비타민 C는 레몬, 피망, 브로콜리, 파슬리, 양배추, 시금치 등에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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