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서른 한 번째 -

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편집자 주-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배는 떠다니는 국가다  

신종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바이러스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각국은 국력을 총동원하여 이 새로운 유형의 재난에 맞서고 있다. 

코로나 19 발생 초기인 2020년 2월. 일본 요코하마(橫浜)항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는 57개국 3,711명의 승선자가 있었다. 그리고 배 안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전 세계의 눈은 일본 요코하마항에 집중되었다. 

▲ (자료출처:Google)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였지만, 일본 당국은 승객을 상륙시켜 치료하지 않았다. 배도 정박한 상태로 대기시켰다. 확진자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일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확진자 발생 28일이 지나서야 이 배는‘코로나 19 배양접시’라는 오명을 쓴 채 승선자 전원을 하선시켰다. 

그렇다면 왜 발생 초기에 다른 승객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육지에 상륙시키지 않았을까? 뉴스를 보던 많은 사람은 이러한 조처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영미 합작의 크루즈 해운사인 프린세스 크루즈사 소속이며, 운영사는 카니발 재팬이고, 선적은 영국이다. 12만 톤급 대형 크루즈로서 일본에서 건조되었다. 

이처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선적지와 선주 국적은 일본이 아니었다. 여기에다 배 안에는 다양한 국적의 승객이 승선해 있었다. 이 때문에 비록 일본 항구에 정박해 있었더라도, 일본 단독으로 배나 승객에 대하여 임의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요코하마 항은 일본 영해로서 일본 땅에 속한다. 사람은 그 나라에 거주하고 있으면, 그 나라 주권에 복종하여야 하지만, 배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 항구에 정박해 있다 하더라도 배 안은 일본 영토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움직이는 국가인 배는 배의선적지가 어디이며, 승선한 사람 국적이 어느 나라이며, 그 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모든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배에서 탄생한 태극기와 일본 국기

앞에서 보았듯이 배도 사람처럼 국적이 있다. 특정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국적이라고 하며, 배의 국적은 선적(船籍)이라 한다. 배가 속하는 국가를 선적국(船籍國) 또는 기국(旗國)이라 한다. 선박이 바다를 항해할 때 반드시 1개국 국기를 게양하여야 한다. 그리고 기국은 자국 선박에 대한 모든 사항에 관하여 자국의 관할권을 행사한다. 다시 말해, 선박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항에 대하여 선박이 소속한 국가의 법령에 따라 처리된다는 것이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이양선 상상도

우리나라 태극기나 일본 일장기 탄생도 배와 관련이 깊다. 역사적으로 국기는 근대국가의 태동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19세기 들어 유럽 각국이 아시아 각국에 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며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의 닫힌 문을 최초로 두드렸던 것은 언제나 바다를 건너 온 배였다. 항구에 가까이 접근한 이양선 돛대에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 깃발은 국가를 의미했다.

이를 처음 접하는 아시아 각국은 그 깃발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국가는 왕조를 상징하는 깃발이나 표시는 있었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은 없었다. 하지만 유럽은 국제법을 운운하면서 왕조가 아닌 국가와 교섭하려 하였다. 이제 아시아 국가에도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필요했다. 이처럼 국기의 탄생은 처음부터 선박과 밀접한 관계속에 시작되었다. 국기를 단 배는 그 자체가 그 나라였다. 

일본 국기인 히노마루도 서세동점기에 탄생하였다. 18세기 일본에 많은 유럽 배들이 접근했다. 쇄국 기조를 유지하고 있던 도쿠가와 막부는 이런 이양선에 대해서 대포를 쏴서 내쫓았다. 일본에 내항하던 이양선은 국제법에 따라 자국기를 게양한 채 운항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런 개념이 없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국 배와 이양선을 쉽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 배를 이양선과 구분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얀 천에 태양을 그린 표지를 선박에 달고 항해하게 하였다. 이렇게 일본 국기는 자국 선박의 식별을 위해서 시작되었고, 처음부터 국가를 상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1854년 도쿠가와 막부는 히노마루를 일본 선박의 표식으로 인정하였고, 1870년 메이지 정부는 히노마루를 정식으로 나라의 상징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1999년 히노마루가 정식으로 국기로 법제화되었으나, 지금도 강제조항은 없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우리나라 최초 태극기

우리나라 태극기도 마찬가지였다.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1월 국기제정에 대한 논의가 처음 있었다. 한 해 전에 일본은 운양호를 끌고 강화도를 불법 침범하였다. 조선이 이에 포격을 가하자, “운양호에 엄연히 일본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왜 포격을 하느냐?”며 생트집을 잡았다. 그렇지만, 조선은 국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고종은 국기를 만들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고종은 조선왕조 어기를 일부 변형하여 직접 도안하기도 하였다. 태극기를 처음 사용했던 곳도 배였다. 1882년 5월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될 때 김홍집이 대표단장으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미국 측은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를 게양하는데, 조선 측은 이런 국기가 없었다. 이에 김홍집은 그동안 조정에서 논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 사용하였다. 

1882년 8월 박영효 등 일행이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배를 타고 가던 일행은 일본에 가서 게양해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정에서 이미 대체적으로 정해진 도안을 고쳐 태극기를 만들었다. 일행은 일본에 도착하여 숙소 지붕 위에 이 기를 게양하였다. 이후 이 태극기가 1883년 3월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배 위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처리하지?

해상에 떠 있는 배는 그 자체가 영토이며, 움직이는 국가이다. “배는 그 자체가 국가”라는 명제는 어디서나 통한다. 항해 중에 일어나는 모든 법적 문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땅에서와 동일하게 처리된다. 배 갑판 위는 그 나라의 법이 통하는 그 나라 땅이다. 

배는 바다에서 고립되어 항해하는 영토의 연장이다. 여기서는 국가라는 공권력이 직접 작용할 수 없고, 작용한다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다. 그래서 배 안이라는 소 국가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여기서 각국은 국가 공권력을 선장에게 직접 주어 배 안의 질서를 유지케 한다. 선장의 권한은 사용자-근로자 관계가 아니라, 국가-국민의 관계처럼 공적 관계이다. 선장에게 선원에 대하여 지휘 감독, 명령, 강제, 징계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이를 처리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배의 선적지, 선주 및 선원의 국적, 배가 있는 장소 등에 따라서 법률관계가 달라진다. 여기에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 system)라는 제도가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 제도를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편의에 따라 적을 둔다’는 뜻이다. 즉, 세금 부담 경감, 인건비 절약 등을 위하여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제3국에 등록하는 제도이다. 예컨대 한국인 소유 배를 파나마에 등록한다고 할 때, 실제 소유자는 한국인이지만, 선적국은 파나마가 된다.  

▲ (자료출처:Google) 페스카마호

편의치적으로 그 배에서 발생한 사안 처리가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보자. 1996년 8월 페스카마(Pescamar)호 선상 살인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론을 맡았던 해상사건이었다. 온두라스 선적의 원양어선 페스카마호는 남태평양에서 조업중이었다. 그런데, 중국인 선원 6명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중국인 선원 4명을 살해하고, 선박을 장악하였다. 

이 사건에서 1차 관할권은 선적국인 온두라스에 있었지만, 온두라스는 재판관할권을 포기하였다. 2차로 가해자 국적국인 중국과 피해자 국적국인 한국에 있었다. 그런데, 용의자 신병을 확보하고 선박의 실질적 관리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였다. 한국인을 살해한 부분에 대하여 부산지법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1월 필자는 전남 신안군 가거도 인근에서 중국어선을 단속중인 해양경찰 함정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쯤 가까운 해상에서 중국어선이 전복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고장으로 다른 중국어선에 의해 끌려가고 있던 배가 기울면서 전복된 것이었다.

즉시 그쪽으로 배를 몰아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사고 지점은 우리나라 배타적 경제수역에 속하는 해역이었다. 승선원 10명 중 4명이 구조되었고, 1명은 사망, 5명은 실종 상태였다. 이런 경우 사안 처리가 복잡해진다. 

▲ (자료출처:해양경찰청) 16년 중국어선 전복 사건

우선 수색구조에 대해서는 사고 지점이나 선적지에 관계 없이 인도주의 관점에서 수행되었다. 선박이나 승선원 국적을 불문하고, 주위 모든 선박을 지휘하여 수색구조를 실시하였다. 해군 함정, 관공선은 물론 중국 측 선박까지 모두 동원하여 실종자 수색을 하였다. 

이와 별개로 해양오염에 대하여는 배타적 경제수역에도 우리나라 법령이 적용되므로 해당 어선에 의한 해양오염 여부를 따져봐야 했다. 만약 기름이 흘러나와 바다를 오염시켰다면, 중국어선은 우리나라 법령에 의해 처벌된다. 

또 다른 문제는 사망한 중국인 선원에 대한 처리였다. 사망자 처리는 형사 절차를 따라야 하므로 우리나라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망자 인계전에 의사에 의한 사망 판정이 필요했다. 즉시 헬기를 이용해 인근 가거도에서 공중보건의를 현장에 데려왔다. 의사의 사망 판정 후 선원은 국적국인 중국에 인계하여 처리하였다.

필자는 매년 해양경찰 함정을 끌고 원양을 항해한다. 주로 싱가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방문한다. 어느 국가를 방문하더라도 배 위에서 교민을 초대해 만찬 행사를 갖는다. 그때마다 교민들이 필자에게 빠지지 않고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대한민국 해양경찰 배가 멀리서 나타나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울컥해졌다. 배 위에 올라오면 고국 땅을 밟는 듯한 생각이 든다”

고국에서 온 거대한 관공선이 항구로 들어오는 광경은 교민에게 대한민국 자체가 움직여 들어오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배는 어디에 있든 떠다니는 국가이며, 움직이는 영토이다.

 

※ 용어 해설
기국
배가 항해할 때 게양하는 깃발에 표시된 국가, 즉 배가 속한 국가를 의미한다. 

이양선
 모양이 다른 배라는 뜻으로 18~19세기 우리나라 근해에 나타났던 서양의 배를 뜻한다.

수신사
 조선 말기에 일본에 보내던 외교 사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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