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와 사람 - 김성기

일요일 오후, 우이동의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김성기 씨를 만났다. 등반가이면서 등산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산을 오르는 행위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과장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차분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그가 꿈꾸는 산과 등산 교육에 대해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낡고 투박해도 정감 있어 종종 사용”

Q 산에 오르기 된 동기가 있을까요?
20대 초반 때부터 산에 올랐어요. 그러니까 1986년도쯤일 겁니다. 직장 선배 중에 대학산악부 활동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산에 오른 분이 계셨어요. 이 선배가 주말마다 저를 불암산으로 불러냈죠. 그때 그곳에는 움박 형태의 오래된 보리밥 집이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거든요. 그 집에서 보리밥과 술을 사주면서 슬랩등반 등을 시키더라고요.^^ 그 당시에 저는 롤러스케이트를 탔었거든요. 몸무게가 59kg 정도였고 정말 잘 탔어요. 근데 암벽등반을 시작해보니…. 그 짜릿함이 더 끌리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죠.

Q 등반 교육의 시작은?
언젠가 불암산에서 암벽 등반을 하다가 바로 옆에서 사고가 나는 것을 목격했어요. 정말 충격이었죠.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산에 올라가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내 눈앞에서 사람이 다치는 것을 보며 나도 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사고 대처능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준비를 해 나갔어요. 그러면서 등산학교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강사가 되었어요.

Q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대구의 고등학교에서 과학 선생을 하시던 분이 기억나요. 4년 전인가 암벽등반을 배우러 왔었죠. 등반교육을 시작한지  2~3일 후부터 우울증 증세를 보이더라고요. 그분이 살아온 인생에서 처음 패배감을 느꼈던 것이죠. 등반이라는 것이 과학 공식처럼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분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상황은 예상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혹시 이렇게 뒤처지는 학생은 학교에서 어찌 교육을 하는지요?” 보통은 두 번 정도 가르치고 따라오지 못하면 포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에 뒤처지는 학생에게는 원하지 않는 수많은 경우의 조건들이 있어서죠. 그런데 교육자가 포기하면 그건 정말 끝이에요. 절대 학생을 포기해서는 안돼요. 수강을 마칠 때까지 집중 관리를 통해 등반법을 교육시켜 줄테니 선생님도 학교에서 교육법을 바꿔 달라고 조건을 걸었어요. 잘하는 사람만 이끌고 가는 것은 교육이라 할 수 없죠. 못하는 사람을 잘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Q 소개해 주실 장비가 궁금합니다. 어떤 장비인가요?

오늘 제가 소개할 장비는 피켈이에요. 이 장비는 등산학교에 들어갔을 때 담임선생님이 선물해주신 거예요. 선생님께서 원정 때 사용하던 것인데 제가 원정을 꿈꾸는 모습을 보시고는 선물해 주셨어요. 선생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등반을 할 수 없게 됐지만요. 은사님의 손때가 묻은 피켈을 보면서 원정의 날을 준비했죠. 선물을 받은 그해 등산학교 동계 반 설산등반 때부터 피켈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캐나다 스노패치 원정 때 이 피켈을 사용했죠. 많이 낡았고 투박하지만 정감이 들어요. 아직도 설산 등반 수업 때는 종종 사용해요. 잘 모셔두고 있죠. ^^ 아직까지 사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Q 장비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수강생들에게 장비에 대한 부분은 교육을 철저히 하려고 해요. 장비는 폼으로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거든요. 등산의 선배로서 고전적인 등반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고요. 신형 장비에 대해서도 교육을 해야 하죠. 신형 장비와 신기술은 최대한 빨리 터득할 수 있도록 해요. 돌로미체 등반 때였나봐요. 이탈리아 등반팀을 만났어요. 하강 로프는 대부분 되감기 팔자매듭을 사용하는데, 그 팀은 옭매듭법을 사용하더라고요. 의아했죠. 왜 저러나 싶기도 했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의 기술이었어요. 지난 일이지만 창피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젠 저도 옭매듭법으로 하강 로프 교육을 하곤 해요. 행위에 있어서 신 기술과 장비 그리고 기능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비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정말 오래된 장비를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장비가 고가라는 이유를 들지만 장비보다 자신의 생명이 더 중요하잖아요. 로프 같은 건 상태를 자주 확인하고 불안하다 싶으면 바로 교체해야 해요.

Q 부상의 경험이 있나요?
등반 중 부상한 적은 없지만 등반을 하러 가다가 다친 기억이 있습니다. ^^ 어느 해 12월 31일이었어요. 운악산 빙벽등반을 하기위해 얼음 아래서 비박을 하려고 접근하던 중에 계곡을 가로질러 가다 바위를 디뎠는데, 눈이 얼어붙어 있었는지 그대로 미끄러져 15m 아래로 추락했죠.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고 복사뼈가 부러졌어요. 그때 생전 처음 병원에 입원을 해봤어요. 병원에 이틀 있었나. 아주 답답해서 죽을 것 같더라고요. 아픈 사람들이 왜 굳이 돌아다니려고 하는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어요. 그 후로도 일주일 입원을 하고 한 달 동안 깁스를 했죠. 깁스를 풀자마자 훈련에 돌입해 바로 원정을 갔어요. 등반을 하다 다친건 아니지만 다친 후의 상황이 정말 싫어서 등반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더라고요.^^ 앞만 보고 자행하던 모습은 확실히 없어졌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등반이 있다면?
특별한 기억보다 같이 다니던 원정 멤버가 있었어요. 2003년도 악수북벽(키르기즈스탄) 원정도 같이 준비했었죠. 그런데 그때 저는 같이 가지 못했어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죠. 한 사람은 선배였고 또 한 사람은 등산학교 제자이면서 후배인 산악인이었어요. 그 두 친구는 제가 중매를 서 결혼까지 한 친구였죠. 신혼생활 1년만의 일이었어요. 원정을 떠났던 두 사람 모두 생을 달리했습니다. 믿기 어려웠어요. 차마 소식을 전할수도, 고인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원정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같이 훈련했던 기억들이 남아 있어요.

Q 솔로 등반을 하실 시간은 없으신지요?
솔로 등반을 하면 참으로 좋지요. 산을 많이 오를 요량으로 교육센터를 시작했는데 다른 업무가 더 많더라고요.^^ 교육 등반 때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요. 오르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거든요. 사실 그런 긴장의 무게를 내려놓은 것만으로도 신이 나요. 저만 생각하면 되잖아요. 자연과 나만의 공간! 살아 숨 쉬는 나를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죠. 저는 산에서 삶의 방법까지 배워요.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지금 나는 오르막길을 걷고 있어’ 라며 위안을 삼아요. 힘들게 오르고 나면 잠시 쉴 수 있는 정상이 있고 또 능선도 나타날 테고… 산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죠.

Q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 생애는 보장할 수 없으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산에 관련된 부동산 일을 하면 좋겠네요. ^^ 앞으로 계획은 고산의 거벽등반을 하고 싶어요. 원정 기회를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차근차근 준비해서 가야죠.
또 등반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암벽등반을 교육하다 보면 겁을 먹는 경우도 있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고 하면서 심리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편안한 심리상태로 이끌어 수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교육을 했는데 요즘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찾아와요. 대중들도 어느 산 정상에 올랐다보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알아가고 있어요. 학생들의 의식이 변한 거죠. 그럼 당연히 교육법도 변해야 해요. 기술과 기능 전달을 벗어나 자기 행위까지 설명 할줄 알도록 하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산을 오르는 행위는 스스로 곤란함을 선택해 해결해내는 과정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둔다고 하죠. 위험성을 제거하는 기술을 숙지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정은 기자 jung@baccro.com


김성기 Profile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97년 미국 요세미테 원정
   - 엘캐피탄 노오즈, 살라테월, 하프돔 NORTH FACE, Royal Archi 등반
·1999년 8월 캐나다 부가부 원정 - The warrior’s way, 전사의 길 A3+ 등반
·2001년 7월 캐나다 부가부 원정대장
   - East Face Diagonol 등반, Sanba’s morning(산바라기의 아침) 코스개척, My Honey Gang(나의사랑 강에게)코스 개척, 보웰(Vowell)빙하지역 탐사
·2002년 7월 이탈리아 돌로미테 산군원정
   - Col dei Bos 봉 코스등반, Cingue Torri (5개봉) 등반
   - 1봉 Torre Grande, 2봉 Torre del Barancio, 3봉 Torre Latina, 4봉 Torre Quarta,
      5봉 Torre Inglese
·2004년 설악산 장군봉 남서벽 개척/ 설악산 유선대 릿지(그리움둘) 개척
·2005년 7월 키르키즈 악수북벽 등반/ 경기 지도자 자격증 2급(산악)
·2006년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설악산 형제봉릿지, 유선대 이륙공천 루트 개척
·2007년 중국 쓰구냥지역 빙벽등반 원정/ 한국스포츠경영지도자(등산부문)
            알프스 몽블랑(4810m) 등정/ 강서구시설관리공단 마곡레포츠센터 스포츠클라이밍 책임강사
·2008년 유럽 알프스 몽블랑(4810m)등반/ 드류(3730m) 북벽 등반, 코스믹릿지 등반
            마터호른(4478m)등정
·2009년 중국 사천성 산악구조대 훈련교관/ 미국 요세미티 하프돔, 앨캐피탄 노즈 등정
·2010년 유럽 이탈리아 돌로미테 산군 원정등반/ 셀라산군  North Face, ‘Messner’ 루트 등반 
            치마그란데산군 CIMA PICCOLA  ‘Cassin’
            CIMA PICCOLA ‘DEL VECCHIO-ZADEO’
            토파나산군 TOFANA DI ROZES - ‘South A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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