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명사 ① 전명헌 I AM 컨설팅 그룹 회장

"좀 더 나이 먹어선 자전거 타고 다니며 사진 찍을 겁니다"


장비에 얽힌 산악인들의 숨은 얘기를 들어본 인터뷰 시리즈에 이어 '아웃도어와 명사'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즐기는 아웃도어를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을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첫 회 인터뷰 대상자는 전명헌(68) I AM(International Automotive Marketing) 컨설팅 그룹 회장입니다. <편집자>

▲ 전명헌 회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고 목소리에서도 힘이 넘쳤다.
현대자동차 미국법인 사장 시절 ‘10년 10만 마일 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미 수출 판도를 바꿔놓은 것으로 유명한 전명헌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은 요즘엔 등산과 트레킹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산을 타기 시작한지 불과 4년여만에 파워 블로거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전 회장을 만나봤다.

1942년 11월생인 전 회장은 우리 나이 70세이지만 60대로 보기에도 민망할 만큼 젊어 보였다. 수수하지만 깔끔한 이미지와 군살을 찾을 수 없는 탄탄한 몸매엔 힘이 넘쳐흘렀고, 인터뷰 중간 중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서는 아직도 청년과 같은 열정이 배어 나왔다.

전 회장은 블로그는 물론 페이스북에서도 열심히 활동 중이다. 트위터는 해 봤는데 별로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단다. 기자가 “요즘 젊은이들은 ‘카페트’를 즐기는데 ‘카페트’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합해서 부르는 말”이라고 하자 갑자기 전 회장의 눈에서 빛이 난다. 새로운 얘기를 들으면 저절로 흥이 솟아나는 듯했다.

내년 봄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 예정

김진원 기자 : 전 회장님 블로그 사진을 보니 히말라야 산군에서 찍으신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에는 자주 가시는지요?
전명헌 회장 : 예, 작년 말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못해서 자주 갈 기회는 없었어요. 주로 가까운 이웃 일본의 북알프스나 남알프스 같은 곳을 많이 다녔지요. 내년 봄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과 캐나다 로키산맥 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건만 갖춰진다면 남미의 안데스 산맥도 올라가 보고 싶네요.

: 등산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 학교 다닐 때는 산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한 7년 정도 대장 노릇을 했지요^^ 74년도에 지리산 종주를 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나요. 그땐 그 무거운 텐트를 둘러메고 다녔는데… 그러다 회사 들어가서 일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는 거예요. 일에 치여서 산을 아예 잊고 살았죠. 만날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더군요. 주말이고 뭐고 없었지요. 그러다가 현대종합상사 사장으로 가 있을 때 사외이사로 계시던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을 만났어요. 이 분이 산을 잘 타시는 거예요. 히말라야 트레킹 얘기며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아 맞아! 내가 그동안 산을 잊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다시 산을 찾기 시작했죠. 북한산 같은 데는 1년에 30번 이상씩 올라갔어요.

: 회장님은 현대자동차 미국법인 사장 시절 ‘10년 10만 마일 보증’이라는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거는 등 매우 공격적인 경영을 하신 걸로 압니다. 그런 경영이 가능했던 것이 산을 좋아하는 성품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느냐, 조용히 앉아 있느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관한 문제인데,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항상 움직이고 나아가고 하는 걸 좋아하지요.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도 주식을 조금 하지만 역시 안정성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공격적인 매매를 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덤벼들어서는 안되지요. 산도 그런 것 같아요. 과감하게 나아가되, 때론 묵묵히 자기의 자리를 지킬 줄도 아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과감하면서도 늘 신중함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 기아자동차 해외영업 본부장 부사장을 역임하는 동안에는 유럽 주요국의 독립 대리점을 인수해서 직영함으로써 판매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키셨었죠?     
: 그랬죠. 당시로서는 아무도 그렇게 할 생각을 못했었죠. 기아자동차라는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심지어 기아차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현대차에 있을 때도 제안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현대차는 이미 브랜드 가치도 오르고 돈을 벌고 있을 때니까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죠. 그렇지만 기아차는 달랐죠. 유럽은 경제적으로 이미 한 나라인데, 독점법이 없어지면 기아차 같은 ‘이름도 없는’ 회사는 설 땅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과감하게 대리점을 인수해서 직접 경영하게 된 거죠. 대리점을 직영으로 하다 보니 경쟁력이 생기는 거예요. 전에는 대리점에다 수수료를 줘야 됐는데 이제는 직영점이니까 적당히 알맞은 범위 내에서 수수료를 책정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효과를 봤죠. 기아라는 브랜드 인지도도 엄청 뛰었어요. 거기에다 잘 되려니까 마침 세계 테니스의 4대 그랜드슬램 중 하나인 호주오픈테니스의 메인 스폰서인 포드가 손을 놓아 버렸어요. 어려우니까. 그래서 그걸 잡았죠. 포드가 갑자기 포기하는 바람에 굉장히 싼 값에 잡을 수 있었어요. 과감하게 메인 스폰서로 나선 거예요. 메인 스폰서가 되면서 기아를 대표하는 광고 모델로 안드레이 아가시를 선택했죠. 그런데 그 대회에서 아가시가 우승을 한 거예요. 그때 광고 효과라는 건 말도 못하죠. 그때 정몽구 회장님이 정말 고마웠죠. 당시 사장을 하던 분이 보수적이라 결정을 못내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회장님께 직접 보고하겠다고 했죠. 내가 정 회장님께 설명을 드리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자 “더 들어가도 좋으니 그대로 진행해” 하며 밀어주시는 거예요. 그게 판단력이죠. 당시 정몽구 회장님과 손잡고 정말 제대로 잭 팟을 터뜨린거지… (전명헌 회장은 역시 아직도 자동차 맨이구나 싶었다. 차 얘기가 나오자 말에 힘이 붙으면서 술술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 중앙일보에서도 회장님이 적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켜서 살려냈다고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 예 그랬죠. 회사는 돈을 많이 벌게 해 줬는데 정작 저 자신은 돈을 많이 못벌었어요.(웃음) 제 기사가 중앙일보에 크게 실리자 당시 상무가 그 기사를 동판을 떠서 갖다 주더라고… 아직도 집에 기념으로 가지고 있죠.

30년간 직장 일에 치여 산 잊고 살아

: 직장 일에 치여서 30년간 산을 가보지도 못했다고 하셨는데, 일도 일이지만 등산이라는 게 현대 문명과는 잘 맞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그동안 경제 성장을 위해 너무 바쁘게 뛰느라고 ‘느림의 철학’을 가진 등산 같은 문화를 접할 엄두도 못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경제도 성장했고 내 삶을 돌이켜볼만한 삶과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다시금 옛날의 여유있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만.
: 그런 측면도 분명 있을 겁니다. 내가 1977년 3월에 현대에 들어온 이후 너무 바빴어요. 계속 해외 출장까지 다니고 하다 보니까 정말 시간이 안나더라고요. 30년 시간 동안 산을 잊고 살았지만 나만 그런 거죠. 다른 사람들은 다 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산이 각광받는 걸 보면 역시 문화가 바뀌는구나 싶긴 합니다.
: 옛날 장비 중 아직도 갖고 계시는 게 있는지요?
: (단호히)없죠.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등산 장비라는 게 따로 없었어요. 그냥 면바지에다 미군들이 쓰던 군화나 배낭, 그리고 스키병들이 입는 파카, 뭐 그런 것들이었죠. 자일도 지금은 얼마나 다 좋아요. 그때는 새끼줄 꼰 거 같은 뭐 그런 것들… 참 가난한 레저였었죠. 요즘 등산용품, 옷 파는 가 보면 좋은 게 너무 많아요. 뭘 사야 될질 모르겠어. 60~70년대에야 산에 갈 때 준비해 간다는 게 고작 버너, 코펠에 군대용 스푼 정도였죠. 버너도 왜 그렇게 무겁던지… 그래도 참 소박한 정서 같은 게 있었는데, 요즘은 산에 가 보면 장비든 옷이든 무슨 전시회 하는 것 같아. 여기저기 알록달록한 게 아주 화려하죠. 값도 다 너무 비싸고… 많이 변했어요.

: 기억에 남는 장비가 있으시다면?
: 지금은 산에 올라가서 밥을 해먹을 수가 없으니까 필요없지만 옛날엔 취사용 불을 피우기 위해 군사용 도끼를 들고 다녔죠. 남대문시장에 가서 멋진 도끼나 단도를 찾는다고 돌아다니곤 했어요. 나뭇가지도 자르고 나뭇잎도 모으고 해서 불을 피웠으니까…(웃음)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요.

: 요즘은 또 사진을 배우러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분야의 사진을 즐겨 찍으시는지요?
: 산에 다니다 보니 그 좋은 자연을 담고 싶어지더군요. 어떤 테마로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똑딱이’ 카메라를 쓰다가 DSLR을 하나 샀는데 하다 보니 기왕이면 좀 더 좋은 걸 샀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급형이라 그런지 좋은 카메라를 보니까 좀 다르더라구요.(정 회장은 역시 아직도 본인의 부족한 점이 있으면 거리낌없이 배우러 다니고, 마음에 드는 첨단 제품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청춘’을 간직하고 있었다)

코스 소개와 상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 필요

 

▲ 전명헌(사진 오른쪽) 회장 인터뷰는 전 회장이 추천한 일산의 한 한정식 식당에서 진행됐다. 깔끔하면서도 소박한 식당과 전 회장의 분위기가 사뭇 닮아 보였다.
: 산이나 트레킹 말고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 지금은 다닐 수 있으니까 산도 가고 트레킹도 하지요. 더 나이 들면 자전거를 타고 싶습니다. 요즘 사진도 재미를 붙이고 있는데 걸어서는 못갈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자전거도 너무 비싸더라구요. 내 친구 중 하나는 1400만원짜리를 타요. 또 한 명은 900만원짜리래요. 그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서 힘드니까 가벼운 걸 타느라고 그렇게 비싼 걸 타는건데, 젊은 사람들이야 굳이 비싼 걸 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 무조건 비싼 걸 탄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 다르죠. 비싼 게 필요하다 그러면 비싼 걸 타야겠죠. 남한테 기죽기 싫고 있어 보이기 위해서 탄다… 이런 게 문제죠. 마지막으로 저희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에 대한 건의나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코스 소개가 아닐까 해요.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으니까… 또 상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것들에 대해서는 비판도 좀 해 주시고…

: 회장님은 그동안 모든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현대차나 기아차의 해외마케팅에서도 남들이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앞서나갔고, 블로그도 다른 사람들이 손대지 못한 친환경자동차라는 첨단 분야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앞으로는 등산과 트레킹을 비롯한 자전거 등 아웃도어에서 나이 드신 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선구적 활동을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바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김진원 기자 thatch@baccro.com
사진 김일환 기자 victor@baccro.com

다음 시간에는 전명헌 회장이 추천한 문영식 안양성모병원 원장을 만나본다. “지난 4월 중국 운남성의 위룽쉐산(玉龍雪山)을 같이 갔었고, 갔다 와서 인수봉을 함께 올랐는데 대단해. 77세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어휴 다리도 나보다 더 굵어… 같이 등산을 가면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예요.” 전명헌 회장이 연신 혀를 찬다^^

 

저작권자 © 바끄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