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국토순례 ①

▲ 자전거 투어리스트 김효찬(오른쪽)·윤희열(왼쪽)씨와 김진원 바끄로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문래동 본사 정문 앞에서 ‘자전거 국토순례’ 발대식을 갖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김일환 기자 victor@baccro.com

전국의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는 일은 모든 이들이 한 번 씩은  꿈꾸는 로망은 아닐는지요. 자신의 온몸과 정신력으로 승부하는 자전거 일주는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꾸준히 자신을 단련하는 마음가짐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는 계기가 아닐까 합니다. 아웃도어 주간 정보신문은 김효찬·윤희열 두 자전거 투어리스트 겸 본지 명예기자의 투어 과정을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편집자>

곳곳서 먹을 것 마실 것 챙겨주는 인심에 피로도 ‘싹’

◆ 8월 24일(수)
서울-안산-화성 (총71km) / 비봉초등학교에서 캠핑 


전국일주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꿈꿔보는 로망 아닌가! 나 역시 그들 중에 하나였다. 그 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지만 며칠 전부터 동생이 조르고 졸라 마지못한 척하고 가게 되었다.

오전에 간단한 출정식을 마치고 오후 1시에 동생 희열이와 출발했다. 오랫동안 같이 자전거 여행을 해왔던 놈이라 심리적으로 의지가 되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타서인지, 날씨 탓인지 몸이 상당히 무거웠다. 출발한지 2시간 만에 안양천 구간에서 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고 싶다!’‘2시간 만에 지치는 데 과연 전국일주를 할 수 있을까?’

안산에 도착해 노적봉 폭포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부지런히 화성으로 페달을 밟았다. 가는 길이 편도 1차선이라 조금 위험한 구간이었다. 비봉 초등학교에서 야영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해가 지기 전에 화성시 비봉면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기로 했다. 비가 와도 문제없게 정자 밑에 자전거를 세우고, 더위 때문에 플라이 없이 이너텐트만 설치했다. 운동장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고 마트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산 다음 첫날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 8월 25일(목)
화성-평택-아산-예산 (총84km / 누적 155km) / 예당저수지캠핑장 


덥다가 춥다가 해서 잠을 설쳤는데 텐트 바로 옆에서 들리는 줄넘기 소리에 새벽 5시 30분에 깼다. 많은 사람들이 캠핑하면서 먹고 남은 삼겹살을 다음날 찌개에 넣어 먹는다. 우리도 어제 먹다 남은 삼겹살을 넣고 김치찌개를 만들어 아침을 해결했다. 텐트를 정리하고 8시에 출발했다. 아침인데도 푹푹 찌는 날씨다.

39번 국도를 타고 아산 방향으로 간다. 도로가 넓어서 그런지 차가 빨리 달려 위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갓길이 조금 넓고(약1.5m) 잔돌들이 없어 무리없이 주행할 수 있었다. 약 20km 주행한 뒤 발안산업단지와 평택호 관광단지에 잠깐 들러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아산을 거쳐 예산에 도착했다. 어제 잠을 설쳐서 오늘은 찜질방을 알아보기로 했지만 하나 있는 찜찔방도 며칠 전 문을 닫았고 학교 운동장에서 하려던 야영마저도 학교 관계자 분에게 퇴짜를 맞아 어디서 자야할지 막막했다. 학교를 나와 얼마나 갔을까... 누군가 차를 타고 우리를 따라왔다. 따라온 분은 그 학교 선생님이었고 친절하게도 10리 정도 가면 예당저수지캠핑장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어제 춥게 자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있어 약국에서 감기약을 먹고 알려주신 캠핑장으로 향했다. 5km 정도 페달을 밟으니 예산저수지군립공원이 보였다. 정식 캠핑장이었고 캠핑 비용도 무료인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캠핑장에서 감기 기운을 달래가며 이튿날을 마감했다.

◆ 8월 26일(금)
예산-청양-보령-대천해수욕장 (총55km / 누적 210km)/ 대천해수욕장 민박 


오늘도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눈을 떴다. 캠핑장의 새벽 아침은 고요했고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어제부터 비록 함께하진 못하지만 마음만은 함께하고 싶다고 우리를 응원해 주는 지인들이 떠올라 그들의 이름을 페니어에 적었다. 이 글을 빌려 고마움을 대신하고 싶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7시 반에 619번 지방도로를 타고 청양을 항해 출발했다. 이른 아침의 시원한 바람, 해 없는 날씨, 차 없는 도로, 언덕 없는 평지, 주위를 둘러싼 자연... 자전거 주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근처 라이딩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이 도로를 꼭 달려보길 추천한다. 청양에 도착해 고추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았다. 고추를 좋아하는 나에게 청양 고추밭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주머니께 고추 2개만 달라고 했더니 좋은 놈으로 10개나 담아주셨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 고추농사를 망쳤다면서 상품가치가 없어 그냥 뽑아버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내가 뿌린 비는 아니었지만 죄송스럽고 숙연해졌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건강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39번 국도로 들어섰다. 감기약 때문에 몽롱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다리에 힘도 풀리고 졸리고, 물도 다 떨어져 작은 언덕 하나를 힘겹게 올라가 잠깐 쉬기로 했다. 언덕에 있는 식당의 아저씨에게서 물을 얻어 마셨다. 아저씨는 전국 일주하는 용기가 대단해 닭 한 마리를 주려고 했지만, 당장 닭이 없다며 안타까워하셨다. 닭은 못 먹었지만 마음은 토종백숙을 먹은 것처럼 든든했다. 오후 1시에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감기 기운에 너무 힘들어서 밀린 빨래를 하며 쉬기로 하고 근처 민박집을 잡았다. 며칠 만에 샤워다운 샤워를 했다. 일상에서는 너무나 소소했지만 그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물통에 보리차와 얼음까지 챙겨줘
고마운 마음에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온몸이 땀에 젖어 마음으로만…


◆ 8월 27일(토)
대천해수욕장·금강하구둑 - 군산·변산반도 (총120km / 누적 330km) / 새만금모텔 


어제 일찍 주행을 끝내고 잠을 자는 바람에 오늘은 주행거리를 늘려 변산까지 가기로 했다.남포방조제를 지나 607번 지방도로로 달렸는데, 처음과 달리 갈수록 낮은 언덕의 연속이었다. 얼마 못 가서 허벅지가 터질 듯이 아파왔고 날씨마저 무더웠다. 부산방조제에 도착해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으면서 숨을 돌렸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것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다. 물이 다 떨어져 가게 아주머니께 부탁드렸더니, 시원한 냉보리차를 냉큼 내주셨다. 얼마쯤 더 달린 뒤 도로변 옆 참외밭에서 참외를 얻어먹었다. 물도 다 떨어지고 갈증이 나던 참에 정말 시원하고 달콤한 참외를 얻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하나 더 먹으라며 손수 깎아 주셨다. 감사한 마음 오래 간직하고 싶어 아주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 뒤 다시 출발했다.

 
21번 국도로 진입하는데 여기도 끊임없이 작은 언덕길이 이어져 페달을 밟기가 쉽지 않았다. 사력을 다해 전라도 군산에 도착했다. 군산항 쯤에서 자전거 앞바퀴에 펑크가 나 수리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설상가상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바닷가 근처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무리 밟아도 시속 20km를 넘지 못했다. 중간에 쉬면서 남은 거리와 시간을 보니 변산까지는 무리였다. 이곳에서 민박을 구하는 것으로 일정을 수정하고 다시 출발했다. 새만금 방조제에 드디어 도착! 예상과 달리 주변에는 상점이나 민박집 같은 곳이 없었다. 여행 오기 전 야간 자전거 주행은 웬만하면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조등과 후미등을 장착하고 25km를 더 달려야 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한줄기 불빛이 보였다. 다행히 모텔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칼국수 집도 있었다. 모텔에 자전거를 던져놓기 무섭게 바로 식당으로 갔다. 바지락 칼국수, 조개회무침, 그리고 참뽕막걸리… 이곳은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 8월 28일(일)
이동거리 : 변산 - 고창 (총74km / 누적 404km) / 고인돌 유적지 

오전 9시 출발. 어제의 피곤함으로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변산반도 해안도로를 돌아 30번 국도를 타고 목적지를 굴비가 유명한 영광으로 잡았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땡볕이다. 변산반도 해안도로에서 세 번째 언덕을 넘을 때 에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자전거 뒤에 달린 짐을 보니 우리와 같은 부류임을 알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일정을 물어보니 없다고 했다. 발 가는 대로 움직일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보다 좀 더 낭만과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아 이번 여행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30번 국도에 이어 23번 국도에 들어서서 라이딩을 계속했다. 대부분의 차들이 우리를 피해 돌아가 주는 선의를 베풀어 주었다. 창문을 열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파이팅을 외쳐 주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순 없으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힘을 얻는 것 같다.

조금 더 가니 ‘프라하의 연인’ 촬영지 표지판이 보였다. 재미없는 국도를 계속 달리는 것보다 잠깐 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핸들을 돌렸다. 들어가는 초입에 펼쳐진 인삼밭의 광활한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비록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잘 왔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촬영지 안에 볼 것이라곤 별로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공원 매점에서 잔치국수 하나와 비빔국수 하나를 시켰다. 맛있게 먹고 출발하는 우리들에게 이모님이 물통에 보리차와 얼음을 넣어 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안아드리고 싶었으나 온몸이 땀에 젖어 있어 감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나왔다. 촬영지를 들른 탓에 오늘 영광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다. 고창으로 최종 목적지를 수정했다. 고창에 도착해 고인돌 유적지에 갔더니 우연히도 한낮에 자전거를 타다 만났던 라이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며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곁들여 간단히 술 한 잔을 걸쳤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님들이 지켜 주시는 가운데 잠을 청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며, 고인돌 유적지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효찬 명예기자·자전거 투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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