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스컵 월드 시리즈 처음 참가한 ‘팀 코리아’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灣)에서 4일(현지시간) 열린 2011~2013 아메리카스컵 월드 시리즈(ACWS) 둘째날 경기 시작 직전, 참가 요트들이 바다 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 Guilain GRENIER]

 

‘팀 코리아’. 올해 여름 올림픽에 참가한 영국 대표 선수단 이름 ‘팀 GB’처럼 팀 코리아 역시 대한민국 대표 선수다. 종목은 요트.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이라는 설명을 지겹도록 들었건만 대표적인 해양 스포츠인 요트 경기는 아직 우리에게 먼 얘기다. 그런데도 팀 코리아는 대한민국 대표로 국제 요트 대회에 참가 중이다. 그것도 1851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最古) 요트 대회에 나갔다. 이름하여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이다. 2011년부터 내년까지는 기존 컵 대회에 새로운 경기를 추가해 ‘아메리카스컵 월드 시리즈(ACWS)’가 펼쳐진다. 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ACWS 10월 샌프란시스코 대회에서 팀 코리아는 8위를 기록했다. 8월 샌프란시스코 경기에서 3위를 기록한 것에 비해선 처진 성적이다. 팀 코리아의 현재를 따라가 봤다.

돈 없어 선장 뺏긴 ‘팀 코리아’

5명의 남자가 있다. 영국인 3명, 뉴질랜드인 2명. 금발의 백인 남성들이지만 이들은 푸른색 바탕에 태극 마크가 선명하게 보이는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한다. ‘팀 코리아’라는 이름을 달고서다. ACWS는 국가대항전 성격을 띠지만 축구로 치면 영국 프리미어 리그처럼 구단마다 세계 각국에서 영입한 우수 선수들이 경쟁하는 대회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대표팀으로 불리는 이유는 경기에 참가하는 요트를 우리나라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팀 코리아를 출범시킨 김동영(38) 대표는 전통적인 요트 강국 뉴질랜드에서 보트 제작을 공부했다.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열리는 ‘코리아 매치컵’을 세계 3대 요트대회로 키워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경기 성적이 다소 부진한 이유가 “선수를 지키지 못해서”라고 했다.

“9월 초께 팀 코리아에 있던 스키퍼(요트를 움직이는 선수들의 우두머리, 선장 격이다) 네이선 아우터리지를 다른 팀에 뺏겼어요. 대회 관계자들은 저더러 ‘도둑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후원도 많고 급여도 많은 팀으로 옮겨 간다는데….” ACWS 경기장 한쪽에 마련된 팀 코리아 베이스 캠프에서 만난 김 대표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못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아우터리지는 스웨덴팀으로 옮겼다.

새로 팀 코리아에 스키퍼로 영입된 이는 올해 21살 피터 벌링, 가장 어린 스키퍼다. 뉴질랜드 출신의 그는 올 여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실력자지만 새 팀에 합류한 지 2주 만에 치른 이번 대회에서 인상 깊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회 3일째인 지난 6일 저녁 그는 “다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충분했으면 더욱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김 대표는 “ACWS에 참가하는 나라들을 보면 하나같이 쟁쟁한 해양 강국 혹은 선진국”이라며 “여기서 제대로 된 기업 후원 없이 참여한 것은 팀 코리아 뿐”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업체인 오라클이 주 후원사를 맡아 넉넉하게 재정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이탈리아 팀은 명품 업체 프라다가, 뉴질랜드는 에미레이트항공사가 최대 후원사다. 참가팀 요트에 후원사인 기업·브랜드의 커다란 로고가 달려 있는 이유다. 하지만 공식 후원사가 없는 팀 코리아 요트에는 오직 태극기와 팀 코리아라는 이름뿐이다. 팀 코리아는 당장 내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루이뷔통컵에 참가할 요트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배를 만들고 팀을 꾸리는 데 드는 비용만 100억원 이상이다. 루이뷔통컵은 아메리카스컵 결승에서 지난해 우승자와 맞붙을 팀을 정하는 대회다.

요트에서 ‘오 필승 코리아’ 만들까

지난달 25일,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훈련 중인 팀코리아 선수들. 피터 벌링·트로이 틴딜·마크 벌클리(왼쪽부터). [사진 Guilain GRENIER]
지난주 샌프란시스코는 수십만 인파로 북적였다. 시 교통국 집계에 따르면 토요일인 6일 하루 동안 대중교통 시스템 바트(BART)의 이용객 수는 역대 최대치인 32만여 명에 달했다. 가을을 맞아 각종 축제가 벌어진 탓도 있지만 그중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ACWS다. 대회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만(灣) 서북쪽, 금문교 근처는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우리나라 대표인 ‘팀 코리아’를 비롯해 미국·영국·중국·뉴질랜드·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 등 8개국에서 참여한 11개 팀의 경기를 보러 온 관중이었다. ACWS는 국제 요트 경기 대회를 축구 경기인 월드컵처럼 치르려는 의도에서 지난해 처음 시작됐다.

1851년 시작된 ‘국제 요트 대회’인 아메리카스컵은 1970년대 이전까진 미국과 영국 두 나라 간 경쟁일 뿐이었다. 대회가 시작될 무렵인 19세기 세계 최고의 해양 강국인 영국의 배 건조 기술과 운용 능력에 미국이 도전장을 던졌고, 이것을 출발로 삼아 ‘아메리카스컵’이 태동했다. 1970년대 프랑스가 이 경쟁에 동참하면서 진정한 국제 경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983년엔 프랑스 브랜드 루이뷔통이 아메리카스컵의 사전 대회격인 ‘루이뷔통컵’을 창설하면서 대회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최근 증권사인 알리안츠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아메리카스컵의 직·간접 경제효과는 80억 달러(약 9조원)로 올림픽·월드컵에 이어 셋째로 크다. TV로 대회를 지켜보는 시청자 수는 2700시간(2011~2013년 ACWS 대회 전체기간)에 걸쳐 약 80억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김동영 대표는 “ACWS, 루이뷔통컵, 아메리카스컵에서 ‘팀 코리아’의 존재가 각인되면 ‘강남 스타일’ 버금가는 문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요트협회 이사를 지냈으며 내년 루이뷔통컵을 총괄하는 크리스틴 벨랑제(56)는 “내년 루이뷔통컵에서 반드시 팀 코리아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트 건조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인 듯했다. 그는 “한국이란 존재가 세계 최고(最古)의 국제 스포츠 경기에 계속해서 아시아 대표로 남아 있게 된다면 2002 월드컵처럼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역동성을 더 잘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는 훌륭한 기업이 대단히 많은데 왜 팀 코리아를 이렇게 내버려 두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김동영 대표는 “지금까지 십시일반 후원해 준 기업도 많았다”며 “ACWS 참가를 계기로 더 많은 관심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사제공 = 중앙일보 │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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