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서 기른 재료로 된장·간장 … 민속촌 장터음식 진짜배기였네

김상구·김상국(76) 쌍둥이 할아버지가 있는 유기 공방에 가면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새까만 석탄이 쌓여 있고 뚝딱뚝딱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국민속촌 백 배 즐기기 비법을 공개한다. 비법이라고 쓴 건 허투루 둘러봐선 민속촌의 진짜 재미를 맛볼 수 없어서다. 재미는 물론이고, 민속촌의 의의와 가치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으면 제법 치밀한 요령과 방법이 필요하다. 우선 민속촌 입구에서 안내지도부터 구하자. 안내지도를 보면 시설 앞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이 번호에 따라 관람 동선을 짜면 편리하다. 자, 그럼 국내 유일의 전통문화 테마파크로 들어가자.


민속촌 100배 즐기려면

 


정문을 통과해 상가마을을 지나면 내삼문(內三門)이 나온다. 내삼문은 궁궐이나 양반가의 바깥채 안쪽에 세 칸으로 세운 대문으로, 내삼문 안쪽이 생활 공간이다. 내삼문을 통과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종이에 소원을 적어 돌탑에 매달자. 소원을 단 종이는 정월대보름에 달집을 태울 때 같이 태운다. 달집 태우기는 정월대보름에 하는 대표적인 세시풍속으로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의미를 지닌다.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청사초롱이 걸려 있다. 선비들이 들고 다니던 등불로, 요즘에는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할 때 상징물처럼 쓰인다. 복주머니도 보인다. 지난 설날 내삼문에 매단 것이다. 민속촌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우리 민족 고유의 소품(小品)이다.

내삼문 안에 들어서면 왼쪽에 장승 수십 기가 떼지어 서 있다. 민속촌에서는 정월대보름 전날 장승을 혼인시키는 장승제를 치른다. 혼례상까지 차려놓고 장정 넷이 장승을 들어 절을 시키고 음복도 하게 한다. 장승끼리 사이가 좋아야 액운을 떨치는 기운이 강해진다고 해서 이렇게 혼인까지 시킨다. 부부의 연을 맺은 장승은 서로 천으로 묶여 있다.

전통가옥 260채 … 집집마다 스토리

1 정월대보름 행사의 백미는 달집태우기다. 마른 나무와 대나무를 쌓고 방문객이 적어 낸 소원지를 함께 태운다. 2 정월대보름의 하루 전날인 23일 민속촌을 찾으면 장승제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한국민속촌] 3 한국민속촌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항상 진행 된다. 중부지방 농가에서는 명주실 뽑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옹기공방을 지나면 5호 남부지방민가 앞이다. 전남 장성에 있던 160년 된 가옥을 옮겨놓은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게 있는데, 집 앞에 세운 볏가릿대다. 남부지방에서는 정월대보름 전날 이삭을 볏짚에 싸서 장대 끝에 매달아 두었다. 그러면 보름날 해 뜨기 전에 아이들이 나와 볏가리대 주변을 돌며 해가 뜰 때까지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볏가릿대에 넣어둔 곡식은 음력 2월 1일 떡을 빚어 머슴들을 먹였다. 2월 1일은 겨우내 쉬었던 머슴들이 다시 농사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해서 ‘머슴날’이라고 불린다.

민속촌에는 현재 260채가 넘는 전통가옥이 있다. 40년 전 개장 때보다 30채 정도 늘었다. 민속촌에 있는 집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쟁여 있다. 이를테면 굴뚝에서도 집안의 권세가 보인다. 농가 굴뚝은 낮고 부엌에 붙어 있지만, 부잣집은 땅에 구멍을 파서 연기를 집 바깥에 세운 굴뚝으로 내보낸다. 절집도 있다. 민속촌이 개장할 때 충남 유성에서 이전한 금련사에는 지금도 비구니 2명이 살고 계신다. 점집에서는 2만원을 주면 역술가가 신수를 봐준다. 33호 제주도 민가에는 제주도 똥돼지 우리가 예전 모습 그대로 놓여 있다. 기와집에 들어가면 기둥에 한자로 쓴 주련(柱聯)이 붙어 있는데, 설명이 없어 아쉬웠다.

아직도 전기 안 들어오는 오지
 
한국민속촌 장인 중 최고령자는 담뱃대 공방의 조재석(84) 어르신이다.
민속촌 전통가옥은 60편이 넘는 사극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였다. ‘조선왕조 오백 년’부터 ‘용의 눈물’ ‘대장금’ ‘성균관 스캔들’ ‘뿌리 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까지, 이른바 ‘대박 사극’ 대부분이 민속촌을 거쳤다. 특히 29호 관아와 22호 양반가, 그리고 나무다리(목교)가 가장 자주 방송을 탔다.

민속촌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화재 위험 때문에 전기를 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극을 촬영하려면 발전차가 들어와야 한다. 발전차가 들어오면 맨땅에 바퀴자국이 남는다. 촬영팀은 바퀴자국을 지우며 촬영을 한다. 추운 겨울이면 배우들이 따뜻한 대기실을 원하지만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래저래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민속촌을 고집하는 촬영팀은 줄을 선다.

29호 관아에서는 옛 형벌 체험과 옥에 들어가 칼을 쓰는 이색 체험도 할 수 있다. 22호 양반가는 1850년대 지어진 99칸 기와집이다. 수원 화성에 있던 걸 옮겨왔는데, 한국전쟁 때는 양반가 안에 있는 사랑채가 수원지방 법원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민속촌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지곡천 주변과 양반가 담장을 따라 조성된 황톳길도 TV에서 많이 보이는 풍경이다. 지곡천에서는 다음달부터 나룻배 체험(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이 진행된다.

우리 것 지키고 다듬는 어르신들

장터 인기 메뉴로 푸짐하게 차린 한 상.
 
민속촌에서는 집도 진짜고, 물건도 진짜다. 어지간한 건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들어 쓴다. 손수 옹기를 빚고, 명주실을 뽑고, 가마니를 짜고, 장을 담그고, 쇠를 두드려 호미와 낫을 만든다. 중요무형문화재 58호인 줄타기 공연도, 3월부터 진행되는 전통 혼례도 옛 방식을 지킨다. 그래서 민속촌에는 어르신이 많다.

민속촌이 ‘장인’이라고 해서 모시는 어르신은 모두 18명이다. 평균 나이는 67세다. 담뱃대공방의 조재석 장인은 올해 84세고, 민속촌 인기스타인 유기공방의 쌍둥이 형제 김상구·상국 장인도 올해 76세다. 양조장의 이정동(71) 장인은 40년째 민속촌에서 동동주를 빚고 있고, 농악단장 정인삼(72) 장인도 민속촌이 문을 연 날부터 오늘까지 날마다 풍물 공연을 한다. 상투 틀고 수염 기른 문일웅(71) 어르신은 손자뻘 되는 손님들과 부채를 만들고, 장터는 장류 발효 전문가 이순복(68) 과장은 민속촌 음식을 책임지고 있다.

민속촌 김성규 대표는 “젊은 세대가 우리나라의 놀이문화를 독점하다시피 한 요즘 민속촌은 거의 유일한 예외”라며 “우리 선조의 지혜를 아직도 정정한 어르신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 교육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민속촌표 동동주는 무형문화재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인도 잘 먹는 꼬치구이.
민속촌은 손수 농사를 짓는다. 민속촌 복판에 논이 있고, 곳곳에 텃밭이 있다. 민속촌에서 기르는 소가 밭을 갈고 연자방아를 끈다. 뒷산에는 김장독을 묻은 토굴이 세 곳 있다. 해마다 배추 2만 포기를 김장한다.

민속촌 맨 끝에 있는 장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된장·간장·고추장부터 음식 재료 대부분을 민속촌에서 기른 것으로 쓴다. 모자라는 건 강화도에 있는 직영농장에서 가져다 쓴다. 민속촌 장터 음식은 서울·경기 지방의 전통을 고수한다. 음식 맛이 심심한 듯 담백한 이유다.

장터 최고의 인기 메뉴는 장터국밥(8000원)이다. 한 해 6만 그릇이 팔린단다. 민속촌에서 직접 담그는 동동주(1만5000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과거 민가가 술을 만들어 팔지 못하던 때에도 민속촌만 제조 허가를 받아 술을 빚었다. 민속촌 안에서만 팔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동동주를 마시고 가는 사람도 많다. 엿장수가 가위짓을 하며 파는 가락엿(3000원)도 인기가 좋다. 외국인은 대체로 감자전(8000원)·해물파전(1만3000원)·손수제비(7000원) 등 밀가루 음식을 주로 찾는다.


●이용 정보=민속촌 입구에서 지하철 1호선 수원역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수원역 5번 출구 근처 정류장에서 민속촌으로 향하는 버스는 오전 10시30분, 낮 12시30분, 오후 2시30분, 민속촌에서 수원역으로 가는 셔틀버스는 오후 2시, 3시30분, 4시30분 출발한다. 031-256-6031. 민속촌은 입장권(어른 1만5000원, 어린이 1만원)과 자유이용권(어른 2만원, 어린이 1만5000원)이 있다. 입장권을 사면 민속촌을 둘러볼 수 있으며, 자유이용권을 사면 민속촌 관람과 함께 민속촌 입구 오른쪽에 있는 놀이마을에서 놀이기구도 탈 수 있다. 승마(어른 5000원)·국궁(5000원) 체험은 별도다. 민속촌 주요 공연 일정은 다음과 같다. 농악(오전 11시, 오후 2시), 줄타기(오전 11시30분, 오후 2시30분), 마상무예(오후 1시·3시30분). 전통 혼례(낮 12시, 오후 4시)는 다음달부터 99칸 양반가(22호) 마당에서 진행된다. 민속촌에 요청하면 용인시 문화해설사가 무료로 해설을 해준다. koreanfolk.co.kr, 031-288-0000. 

 [기사제공=중앙일보 |글=손민호·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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