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트레킹②] 낭만적인 여행지인 스위스는 유난히 아름다운 별명과 수식어가 많은 곳이다. 그런 만큼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역시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알프스’다. 동서로 1,200㎞, 남북으로 200㎞, 해발 4,000m급 영봉과 빙하 그리고 만년설로 뒤덮인 거대한 산맥. 평화로운 산간마을과 만년설, 자연과 더불어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또 다른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알프스의 여왕’이라는 마테호른. 마테호른을 독일어로 ‘알프스 초원의 뿔’이란 뜻이다. 그 자리에 서서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마테호른을 보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체르마트 마을에서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마테호른이 가장 아름답다는 일출과 일몰 무렵, 시시각각 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알프스 여신’의 도도한 자태를 볼 수 있다.

둘째는 마테호른 글라시어 파라다이스 전망대(3,883m)에 오르는 것이다. 산 정상까지는 곤돌라와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한다. 정상은 융프라우요흐보다 높고 유럽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역이다. 바로 눈 앞 가까이에서 장엄한 마테호른을 감상할 수 있다.

셋째, 고르너그라트(3,089m)에 올라가서 보는 법이다. 여기는 체르마트에서 산악열차가 운행된다. 느긋하게 산을 밟아 올라가는 열차의 시간은 대략 50분. 이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면 마테호른 주변으로 펼쳐진 4,000m급 알프스 연봉들을 볼 수 있다. 앞을 내다보면 마테호른 동쪽벽,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인 글라시어 파라다이스, 브라이트호른(4,164m), 리스캄(4,527m), 그리고 이탈리아와 맞닿아 있는 스위스 최고봉 몬테로사(4,634m) 등 거봉들이 이어져 있다.

고르너그라트는 마테호른을 비롯한 거대한 봉우리들을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탓에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유럽 관광객들이야 제쳐두고라도 동양에서는 일본인이 가장 많다. 일본인에게 알프스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로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전 세계 관광지를 휩쓸고 있는 중국인의 인력공세를 느낄 수 있다.

보통 관광객들은 올라온 열차를 차고 내려가지만 고르너그라트의 빙하와 호수에 비친 마테호른을 제대로 보기 위해 라펠베르그(Riffelberg)까지 걸어서 내려가는 것이 좋다. 길은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쉬운 코스다. 길 위엔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트레킹을 즐긴다. 노인은 물론 어린아이부터 갓난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 산악자전거를 탄 연인, 심지어 강아지들이 섞여 있다. 하이킹 초보자들에게 ‘내려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내리막길은 무한정 매력적이다. 하산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미처 기차를 타고 올라갈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하강’의 즐거움이 곳곳에 숨어 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보니 3시간여 하산길은 1시간이 지나도 몇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달력이나 액자로만 봤던 풍경들이 느릿한 길에 자꾸만 시선을 잡는다.

발밑에 서걱대는 흙이나 풀 소리, 뽀뜨득 거리는 눈 소리에 저절로 귀 기울이게 된다. 산은 협곡과 호수를 돌아 한없이 뻗어 있다. 흰색과 초록의 향연이 끝이 없다. 드디어 호숫가에 도착했다. 물속에 비친 마테호른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벌써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저마다 마테호른과 어우러진 호수를 찍기 위해 분주하다. 오직 사진에 열두하고 있는 노신사의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호숫가 100m 근처에는 수만년을 묵묵히 지탱했을 고르너그라트 빙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물끄러미 빙하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본다. 위대한 자연 앞에 홀로 선 인간,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는 착각에 빠진다.

호수에서 라펠베르그역까지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흰색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빨갛고, 노랗고, 연초록빛 야생 꽃 잔치가 펼쳐진다. 역 옆에는 마테호른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은 점심을 먹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이미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맥주를 기울이면서 만년설 감상에 빠져 있다. 느림과 힐링. 그 진정한 멋스러움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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