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트레킹③] 알프스에서의 세 번째 트레킹은 능선을 걸으면서 맞은편의 융프라우(4,158m), 아이거(3,970m) 고봉들과 맞닥트리는 것이다.

먼저 인터라켄 오스트역에서 그린델발트(1,034m)로 향했다. 그린델발트는 아이거 등의 거봉을 향하는 탐험가들이 많아 일명 ‘탐험가들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에서 휘르스트까지는 곤돌라를 타야 한다.

휘르스트(2,168m)는 겨울철에는 스키, 여름에는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명소다. 그린데발트에서 휘르스트로 향하는 곤돌라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되고 있다. 총길이는 4,355㎞ 약 30분이 소요된다. 곤돌라를 타니 발밑으로 스위스의 전통 집들이 작아지더니 조그마한 점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곤돌라 너머 창밖에는 만년설과 초록색 때깔 옷을 입은 능선의 평화로운 이미지가 시시각각 지나간다.

곤돌라에서 내리면 풍경부터가 탄성이 절로난다. 휘르스트에서 바흐알프 호수까지 굽이굽이 이어진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서 오늘의 도착지 쉬니케 플라테까지는 총 7시간이 걸리는 하이킹 코스. 하지만 큰 부담이 없다. 목동이 양 수십마리를 끌고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지형이 완만하다. 터벅터벅 걷는 흙길이 포근한 정취를 자아낸다. 산길 양옆 초원들은 노랑, 보라, 빨강 등 다양한 색깔의 야생화를 피워 놓아 트레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휘르스트 산장에서 시작되는 트레킹은 해발 2,265m 지점에 위치한 바흐알프 호수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깨끗한 수면에 비치는 만년설의 웅장한 자태를 보는 순간 누구라도 자연의 경이로움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마치 액자에 걸린 그림같다. 여기저기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쁘다. 눈을 들어보니 파란 하늘과 만년설을 머리에 얹은 봉우리들, 신록의 풀과 각양각색의 야생화, 여기에 화룡정점처럼 빛나는 호수의 물빛이 더해져 달력의 장면을 연출한다.

호수는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하늘과 산이 호수에 비치는 바람에 좌우, 상하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산에서 내려온 빙하수와 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손을 담갔는데 아주 차가웠다. 이 호수를 낀 풍경도 조금 위쪽으로 올라오니 더 근사했다. 호수가 저 멀리 보이는 흰 봉우리와 대비되면서 더욱 푸른색으로 빛났다.

바흐알프 호수에서 파울호른(2,686m)까지는 오르막길이다. 한국의 ‘깔딱고개’가 생각날 정도로 숨을 헐떡거린다. 하지만 풍경만큼은 ‘액자 없는 그림’이다. 수목한계선 때문에 키 큰 관목이 자라지 않아 작은 풀로 뒤덮인 산의 매혹적인 자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파울호른 정상에는 레스토랑이 있어 쉼터로서 제격이다. 이곳에서 정면으로 응시하면 흰 눈에 덮인 융프라우, 아이거, 뮌히 등 4,000m 이상의 고봉과 그 아래로 넓은 고원지대와 협곡, 분지, 빙하지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라우처호른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고 여유롭다. 아기를 등에 업고 오르는 아빠, 초등학생 나이로 보이지만 씩씩하게 걷는 아이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인생 여정을 꿰뚫고 있을 것 같은 늙은 노부부 등 가족단위의 하이킹을 즐기는 숱한 사람들을 만난다. 능선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 만년설의 거봉이, 반대편은 인터라켄의 푸른빛 호수가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다.

이제 하이킹은 마지막 지점이 쉬니케 플라테로 향한다. 협곡을 왼편에 두고 걷는다. 들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는 산길이 이어진다. 초원은 온통 키 작은 야생화 천국이다.

해발고도 1,967m의 쉬니케 플라테는 1893년 개통되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톱니바퀴 철도가 지금도 운행되고 있다. 역 벤치에 앉으면 반대편에 융프라우를 비롯한 만년설의 거봉이 펼쳐진다. 그 절경에 빠져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한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하다. 손을 뻗으면 내 몸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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