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트레킹④] 스위스 알프스를 대표하는 명소인 인터라켄 융프라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매년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죽기 전에 꼭 가 볼만한 곳’으로 찾는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3,454m)까지 산악철도가 놓여 있어 가장 편하게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융프라우 열차를 타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선 인파를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적인 걷기 열풍과 함께 융프라우는 전 세계에서 온 하이킹족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융프라우 일대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하이킹 코스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개개인 취향과 난이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하이킹 코스만도 무려 70여 개가 넘는다. 산악열차로 오르내리던 그 길을 이제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편안하게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보통 하이킹의 시작은 아이거글렛처나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거글렛처는 산악열차가 아이거봉의 암반을 뚫고 올라가기 바로 전 역의 명칭이다. 이곳에서부터 풍경은 사라지고 열차는 컴컴한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클라이네 샤이텍은 융프라우와 아이거를 뒤에 두고 멘리헨(2,342m)이나 그린델발트로의 트레킹 시작점이다. 

아이거글렛쳐에서 좌측의 알피글렌까지의 36번 하이킹 코스는 일명 ‘아이거 트레일’이라고 한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아이거 북벽을 오른편에 끼고, 왼쪽으로는 산 아래로 펼쳐진 초원을 내려다보며 2시간50분 동안 걷는 코스다. 웅장한 아이거 북벽을 배경으로 내려오는 멋진 코스로 북벽을 정복한 등반가와 불운하게 실패한 산악인의 수많은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하나는 클라이네 샤이텍까지 내려가는 코스로 ‘아이거 워크’라고 불린다. 비교적 완만한 내리막 37번 코스로 거리는 3㎞에 불과하며, 시간은 대략 45분 정도 걸린다. 유럽 최고봉이라는 융프라우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코스로 침엽수는 보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 발이 저절로 멈춰질 정도로 이름없는 들꽃과 야생화가 지천이다.

클라이네 샤이텍에서는 알피글렌까지 내려가는 기찻길을 따라 하이킹을 하거나, 아니면 반대편 역인 벵엔알프까지 계속 하이킹을 할 수 있다. 비교적 거리가 짧아 누구나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그래서인지 이 코스는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일행과 노인들의 비중이 많다.

하이킹 일정을 아이거글렛쳐에서 알피글렌으로 내려서는 ‘아이거 트레일’ 코스로 잡았다. 가장 가까이 아이거 북벽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벽을 가로질러 가는 멋들어진 코스다. 적벽에 가까운 아이거 북벽은 그 길이만 1,800m에 이른다. 알프스 3대 북벽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정상을 허락했을 정도로 등반하기에 난코스였다고 한다. 아이거 북벽은 1938년 독일과 오스크리아 연합 등반대에 의해 처음 정복됐다. 우리나라 산악인(윤대표, 허욱)은 1979년에 처음으로 아이거 북벽 등정에 성공했다.

하이킹 길은 길게 둘러 있지 않고 산 옆구리를 잘라 직행한다. 나무 없는 언덕이라 탁 트였지만, 그렇다고 부드러운 흙길은 아니다. 자갈과 군데군데 녹지 않는 눈, 그리고 소들의 배설물이 길을 차지하고 있다. 하이킹 길은 사람 두 세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지만 옆으로 비켜나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이 길은 묘미는 북적북적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터벅터벅 내려가는 길에 상념은 사라지고 머리는 비워진다. 따스한 햇살과 가끔씩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청정한 공기에 ‘내려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엔 충분하다.

눈을 살짝 들어 위로 보면 아이거, 뮌히, 융프라우는 정수리에 하얀 눈을 살짝 얹은 채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검은색의 암벽과 산을 감싸고 있는 흰 눈이 빚어내는 산세에 압도된다. 그 장엄한 풍경에 발걸음을 몇 번이나 멈출 수밖에 없다. 거대한 북벽은 잠시도 긴장을 끈을 놓지 않게 한다. 거대한 북벽 위용에 섬뜩 놀라고, 눈 녹은 물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흩날린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부드러운 산릉이 펼쳐진다. 능선은 직선과 곡선의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선을 긋고 있고, 인터라켄의 푸른 호수는 옥빛 에메랄드처럼 반짝인다.

하이킹은 알피글렌 열차역에서 끝맺는다. 이곳에서 융프라우 열차를 타고 그린덴발트로 내려선다. 그러면 기차는 어느새 인터라켄까지 내 몸을 실어준다. 하이킹을 느낌을 제대로 받은, 정말 행복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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