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1545-1598)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충무공 이순신의 백의종군길 탐방

임진왜란(1592-1598)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던 1597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선조는 풍전등화 난파 직전의 조선을 구하기 위해 28일 만에 이순신 장군을 석방하고 1597년 4월 1일 백의종군 처분을 내렸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란 흰옷을 입고 군대에 복무한다는 뜻으로 벼슬이 없는 말단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 참전하는 것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실제로 흰옷을 입는다는 뜻이 아니고 관직이 없는 신분임(보직해임)을 관용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이순신은 53세의 나이로 한성(서울)을 출발한 후 경상남도 초계(합천)에 도착하여 도원수 권율의 부하로 백의종군 하던 중,  8월 3일 경상남도 진주의 손경례 집에서 삼도수군통제사에  재 임명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했다.

바끄로뉴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협동조합 놀이문화원이 기획한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길 탐방을 밀착취재 했다.  백의종군길은 420여 년 전 이순신이 아무 불평 없이 기꺼이 졸병보다 못한 신분으로 전장에 나갔던 그의 충효사상이 녹아 있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은 길이다. 제주 올레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등에 결코 뒤지지 않는 조상의 혼이 담겨 있는 살아있는 길이다.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전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 스탬프함과 스탬프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전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 스탬프함과 스탬프 

전승훈(62)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가 장도에 올랐다. 전이사장은 백의종군길 670km와 주변 유적지 130km 등 총 800km를 자전거로 탐방할 예정이다. 총 6개 구간으로 나누어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출발하며 전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해 스마트 환경도 조성할 계획이다.  9월 5일 오전 9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를 방문하고 이순신 생가터 표석에 인사한 후 의금부 자리가 있었던 종각역에서 대장정의 스타트를 끊었다. 평택에 도착하여 하룻밤 묵었고 6일에는 북상중에 있는 제 10호 태풍 '하이선'의 강한 비바람을 만나 일정을 축소하여 충남 아산까지 내려간 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편집자 주)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신도빌딩 앞에서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신도빌딩 앞에서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이순신은 1545년(인종 1년) 4월 28일 한성부(서울) 건천동(乾川洞, 현재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와의 사이에  4형제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행정구역 개편으로 건천동 이름은 사라졌으며 이순신 생가터의 정확한 위치를 두고 오랫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던 중 1956년 서울시사편찬위원회와 한글학회는 고문헌과 고지도를 바탕으로 고증한 결과 현재의 서울시 중구 인현동 1가 31-2번지 신도빌딩 자리를 충무공 이순신의 생가터로 추정했다. 이전의 명보극장인 명보아트홀에서 인쇄소 골목을 따라 약 100m 안쪽 거리에 있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생가터에 안내판이 없어 쓸쓸하고 안타깝다"며 자비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안내 동판을 만들었고 충무공 탄생  472주년 기념일인  2017년 4월 28일 신도빌딩에 설치했다.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석 앞에서(좌측부터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이정임 할머니, 필자)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석 앞에서(좌측부터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이정임 할머니, 필자)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석>

서울시는 1985년 을지로 명보극장 앞 대로변에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석을 설치했다.  많은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실제 생가터보다는 조금 떨어진 번화가에 세웠다. 표석에는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옥포 한산도 해전에서 승리를 이끌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었으며 선조 31년 노량에서 전사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백의종군길 출발에 앞서 5일 아침 9시 명보아트홀에 도착하니 '이순신 할머니'로 통하는 이정임(85)씨가 표석 주위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명보극장 앞에서 1960년부터 신문가판대를 운영해온 터줏대감 이할머니는 이순신 표석을 35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닦고 청소해왔다. 충무공 후손 덕수 이씨 종친회는 1998년 이 할머니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충무공 탄신 기념일에는 귀빈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할머니는 “26살 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며 “이제는 힘이 달려 어렵지만 그래도 아침에 나와서 이순신 할아버지 비석을 닦을 때가 제일 즐겁다”고 말했다.

 

 종각역 1번 출구 SC제일은행 본점 앞에는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출발지’
종각역 1번 출구 SC제일은행 본점 앞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출발지’가 있다.

<의금부 터,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출발지>

종각역 1번 출구 SC제일은행 본점 앞에는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출발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 곳은  조선시대에 의금부가 있었던 자리다. 1597년 4월 1일 선조의 명으로 풀려난 이순신은 옥문을 나온 후  만감에 젖어 한동안 목멱산(남산)을 바라보았다. 고문으로 몸이 성치 못했고 나라가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어 기뻐하기보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무 직위도 없이 슬픈 마음을 안고 구국의 먼 길을 떠났다. 사단법인 한국체육진흥회는 해군본부고증자료와 각지방자치단체가 만든 길 등을 종합하여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만들었는데 그 출발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승훈 이사장은 "남태령 고개길을 넘을때  이순신 장군이 간 길을 나도 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장군과 한 배를 탄 느낌이 들었다"며 "백의종군길을 잘 조성하여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고 후대에게 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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