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남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남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아산 게바위를 출발하여 정안을 향해 한적한 국도를 달리며 잠시 생각을 했다.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당시 풍습인 3년 상은 백의종군 신분이라 엄두도 못 내는 상황 속에서 남쪽을 향해 발길을 옮기며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과 불효막심함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2글자로 하면? 엄마.
4글자로 하면? 죄송해요. 
5글자로 하면? 보고 싶어요. 
12글자로 하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전화를 걸면 전화 받을 어머니가 계시나요? 그렇다면 이 글 읽는 것을 멈추고 안부 전화를 하세요. 지금.

 

 예비군 마크
 예비군 마크

알밤의 고장인 정안을 거쳐 도사님들이 많았다는 계룡으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공주 예비군훈련장이 나왔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예비군 가는 길에 승리뿐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 부대의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이 무장을 하고 청와대 습격과 정부 요인 암살 지령을 수행하러 수도권까지 침투한 사건이 있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1968년 4월 1일 우리나라에 예비군이 창설되었는데, ‘무장공비’라는 말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 사건과 1950년 6·25 동란의 공통점은 둘 다 일요일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비겁하게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쳐들어 왔다'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의 약점이 적에게는 공격 포인트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은 '최악의 경우를 설정'하고 대비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 전라좌도수사(여수)에 부임하자마자 전시상황을 설정하여 여수 군영을 엄격히 정비했고, 나대용 군관에게 지시를 내려 거북선을 만들게 했다. 극적인 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하루 전날 거북선이 완성됐다. 지금 해야 할 일을 지금 정성으로 하고 있을 때 하늘도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왜(일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선제공격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고도 패배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는 조선의 예비군 병력이라 할 수 있는 의병과 승병이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다. 무사가 아니면 싸우지 않는 왜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왜는 영주(다이묘)를 제압하거나 제거하면 종전과 함께 승자가 되기 때문에 조선의 왕을 잡으러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북진하여 20일 만에 한성에 도착했으나, 선조가 궁궐을 떠나 의주로 몽진을 떠났기 때문에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멘붕이 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요인은 군신(軍神)이라 불리는 이순신 장군이 곡창지대를 지키며 바닷길을 막고 있어서 전쟁물자나 식량을 실은 왜의 보급선이 서해안을 타고 올라갈 수 없었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왜군은 비교적 따뜻한 자기 나라에 있다가 타국인 조선에서의 매서운 겨울 추위를 감당하기 어려워 전투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또 다른 장군이 협공을 하였는데 바로 ‘동장군’이다.

공주 예비군훈련장을 벗어나 익산 방향으로 페달을 밟으면서 생각했다. "양복을 입는 신사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야성미?가 넘치는 이유는 뭘까?" ^^

 

노성면사무소 옆집 담벼락이 예쁘게 색칠이 되어있고 ‘동고동락’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노성면사무소 옆집 담벼락이 예쁘게 색칠이 되어있고 ‘동고동락’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계룡을 지나 노성면에 도착했다. 노성면사무소 옆집 담벼락이 예쁘게 색칠이 되어있었고 ‘동고동락(同苦同樂)’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일부 기업인이나 정치인들 보면 말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을 넘어 ‘생사고락(生死苦樂)’ 함께 할 것처럼 사탕발림하면서 결국은 혼자서 ‘희희낙락(喜喜樂樂)’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3대를 멸하라!”라는 왕의 명령이 그리워진다.

왕이 3대를 멸하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수라면 생업을 포기하고라도 반드시 갚는다. 손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원수는 기회가 되면 갚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넘어간다. 증손자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원수는 원한 관계가 아니고 요원한 관계가 되기 때문에 흐지부지된다. 그래서 왕은 본보기 겸 보복이 두려워 3대를 멸하라고 한 것이다. 본보기의 강도는 약했지만, 이순신 장군도 할아버지인 이백록의 영향(기묘사화·조광조)으로 아버지인 이정에게 어려움이 있었고 그 영향이 이순신 장군에게도 미쳤다.

잠깐만.
‘3’자에 관한 이야기들….
작심 3일, 의사봉은 3번 두드리고, 야구는 3진 아웃, 가위바위보는 3 세 판, 북한의 김정은 3째 아들, 삼성 이건희 회장 3째 아들, 선조 임금 3째 아들, 이순신 장군 3째 아들이면서 3번 파직에 3도 수군통제사….

 

익산 보석박물관
익산 보석박물관

다시 페달을 밟아 익산으로 달렸다. 멀리 익산 보석박물관이 나타났다. 건물 디자인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가까이 갈수록 프랑스에 있는 루브르박물관과 디자인이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 19로 인해 내부 관람은 금지가 되었기 때문에 건물 세부 디자인과 주변 조경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질문>
만약에 루브르박물관이 대형화재에 휩싸여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급박한 상황에서 당신에게 안에 있는 전시 작품 중 하나를 골라서 들고 나오면 선물로 준다고 한다면, 어떤 것을 들고 나오겠습니까?
모나리자, 비너스, 천장에 새겨진 그림…?

아닙니다.
출구에서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ㅎㅎ.

 

완주에서 소녀상과 필자
완주에서 소녀상과 필자

삼례역을 향해 1시간 정도 달렸다. 멀리 삼례역이 보인다. 길 좌우로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뽐내며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다. 사열을 받는 듯해서 우쭐해졌다. 연이은 조형물 중에 평화의 소녀상이 보여서 멈춰 섰다. 그리고 지나가는 초등학교 5학년 녀석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아이에게 이 평화의 소녀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다. “일본 놈들이 우리 할머니들에게 나쁜 짓 한 거를 잊지 말라고 만든 거요.” 이어서 말한다. “아저씨! 그런데요. 이거는 우리보다 일본 사람들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법이다.

한 동물학자의 연구결과, 원숭이가 사람을 따라 하는 것 두 가지와 전혀 따라 하지 못하는 것 두 가지를 알아냈다. 따라 하는 것은 재미있는 상황에서 웃는 것과 잘 못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혀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은 후회는 하는데 개선이 안 되는 것과 동물적 본능과 지능 때문에 처지를 바꿔놓고(易地思之)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렇다.

 

 자전거 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삼례역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 기획 탐방을 혼자서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북에 있는 놀이문화원 식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응원하러 삼례역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흥분되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걸 보니, 혼자서 외로운 인고의 시간을 많이 보냈나 보다.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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