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황전면 충무공 이순신,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황전면 충무공 이순신,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구례구역을 지나 순천 황전면에 도착했다. 황전면은 작년(2019년)부터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제1회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 길 걷기 행사”를 개최한 마을인데, 황전천변과 송치재를 넘어가는 구간으로 총 4㎞를 걷는 행사로 진행한다.

 

 순천 밥상,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순천 밥상,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12시가 조금 지나 순천에 들어섰다. 기사식당이 보인다.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백반 한 가지다.ㅎ 식탁 위에 비닐로 된 식탁보가 두껍게 깔린 걸 보니 웬만큼 맛을 내는 집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식탁에 앉았다. 밥상이 쟁반째 놓였다. 와우~! 반찬도 반찬이지만, 약간 신맛 나는 김치에 아끼지 않고 두껍게 썰어 넣은 돼지고기와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더욱이 돼지고기는 대접 밑에 더 많이 깔려 있었다. 이 맛에 기동성을 가진 기사님들이 단골이 될 수밖에….

 

 남양 구례 광양 순천 이정표,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남양 구례 광양 순천 이정표,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학구마을을 지나 순천 선평삼거리를 향해 달렸다. 추억의 17번 국도 이정표가 보이는데, 17번 국도는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서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까지 이어진 도로이다. 중부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고향을 갈 때 이 국도를 이용하면 고속도로 통행요금과 시간까지 함께 절약되는 환상적인 도로였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자동차보험 갱신할 때 사은품으로 항상 그해에 나온 지도책을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의 일반도로와 고속도로는 도로의 번호가 붙여지는 법칙이 있다. 남북으로 난 도로의 번호는 ‘홀수’이고, 동서로 난 도로의 번호는 ‘짝수’이다. 나침반 없이 이정표나 지도만 있을 때는 도로의 번호만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팁: 기차의 량(칸)번호는 1번이 서울 쪽을 향해 연결되어 있다.

 

양지나들목, 인터넷 캡쳐
양지나들목, 인터넷 캡쳐

<잠깐만>
연수원이 기흥과 용인 쪽에 많았을 때다. 연수원 출강을 위해 영동고속도로의 용인과 덕평 사이에 있는 양지나들목을 자주 이용했는데, 기흥 부근서 차량정체가 너무 심해 강의 시간에 쫓기게 되었다. 강사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 강의장 모습을 너무 잘 알기에 벌금을 내더라도 과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지나들목을 나와 꽃동네가 있는 진천 방향으로 가는 17번 국도를 평소보다 빠르게 달렸다. 당시에는 달리다 보면, 가로수 그늘에 교통경찰 마네킹을 세워놓아 운전자들이 속력을 줄이곤 했는데, 마네킹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늦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빠르게 달렸다. 바로 그 순간. 교통경찰 마네킹 뒤에서 교통경찰이 영혼이 빠져나오듯이 미끄러져 나온다.
아~!!!

경찰: 수고하십니다! 면허증 좀 보여주세요(이때는 실랑이하지 말고 면허증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필자: 애쓰십니다! 강의 시간에 너무 늦어서 그만….
경찰: 위쪽에 있는 제한속도 표지판 못 보셨어요?
필자: 표지판은 봤는데, 아저씨를 못 봤어요.
경찰: ㅋㅋㅋ. ㅎㅎㅎ. 
필자: 제가 너무 빨리 달렸죠?
경찰: 아닙니다. 너무 낮게 비행하셨습니다.
필자: (강적이 나타났다….)
경찰: 재미있는 분이라, 벌점이 없는 안전띠 미착용으로 3만 원짜리 스티커를 발부하겠습니다.
필자: 저~야~ 고맙죠~

잠시 후 달리면서 백미러를 보니까, 교통경찰은 다시 마네킹과 합체하고 있었다.

 

효심,  현충사 사당에 있는 십경도에서
효심,  현충사 사당에 있는 십경도에서

이순신 장군은 순천에서 머무는 동안 모친상과 본인의 안부 등에 대해 여러 차례 위로를 받았지만,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불효와 그리움은 난중일기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4월 27일 
ㆍ아침 일찍 떠나 순천에 도착하자 이득종과 정선이 문안하러 왔다. 
ㆍ저녁에 원수(권율)는 내가 온 것을 알고 권승경을 보내어 조문하고 안부도 묻는데 위로하는 말이 매우 정성스러웠다. 

4월 28일
ㆍ아침에 원수가 또 군관 권승경을 보내어 문안하고 "상중에 몸이 피곤할 것이니 기운을 찾는 대로 나오라"라고 했다.

~중략~ 

5월 2일 
ㆍ원수는 보성으로 가고 병사는 본영으로 갔다. 
ㆍ남원의 종 끝돌이가 아산에서 와서 "어머니의 영연이 평안하다"라고 전했다. 홀로 빈 동헌에 앉아 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견디랴.

~ 중략 ~ 

5월 4일 
ㆍ오늘은 어머니 생신날이다. 애통함을 어찌 견디랴. 닭이 울 때 일어나 앉으니 눈물만 드리울 뿐이다. 

5월 5일 
ㆍ오늘은 단오절인데 천 리 되는 천애의 땅에 멀리 와서 종군하여 어머니의 장례도 못 치르고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니, 이 무슨 죄로 이런 앙갚음을 받는 것인가. 가슴 찢어지듯이 아프다.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 난중일기 정유년 중에서 -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전, 먼 옛날부터 효도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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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실 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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