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가장 좋은 길,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가장 좋은 길,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석주관(石柱關)을 출발하여 화계장터로 달린다. 역시 섬진강 줄기 따라 형성된 강변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엔 환상적이다. 우리나라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자전거 길을 여러 번 다녀봤지만, 섬진강 자전거 길이 단연 압권이다. 

 

홍수로 인해 흉물스럽게 변한 나무,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홍수로 인해 흉물스럽게 변한 나무,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섬진강과 강변에 심겨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시원하게 달리다가 놀라서 황급히 멈춰 섰다. 올해의 기록적인 장마와 연이은 태풍의 위력으로 나무 위에 걸려있는 부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강변도로 가드레일 높이보다 위로 2m가량 올라가서…. 
당시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것 같았고, 더욱이 아랫마을 화계장터는 고도가 더 낮은 곳이라 심란하기까지 했다.

 

화개장터 표지석,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화개장터 표지석,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화개장터에 들어서고 나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수와 태풍의 흔적을 말끔히 걷어 내고 새롭게 단장한 모습이 보였다. 안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상인들과 지역주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조영남 조형물,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조영남 조형물,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한시름 놓고 보니, 장터 중앙에 있는 가수 조영남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

이른 아침,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상인들끼리의 사투리가 정겹다. 더욱이 전라도 말로 질문하고 경상도 말로 대답한다. 그렇다. 원래 전라도와 경상도는 동·서로 갈라지지 않고 화개장터처럼 지역감정이 없이 혼사(婚事)도 치르고 왕래(往來)도 하면서 잘 지냈다. 정치인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임진왜란에 이어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 이어 한국전쟁(6.25), 한국전쟁에 이어 남북분단,  남북분단에 이어 남쪽은 다시 동·서(전라도·경상도)로 갈라진 지역감정….
북쪽과 동·서로 갈라진 남쪽을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의 옛날 지도위에 올려놓으면, 과거로 되돌아간 '신 삼국시대‘가 된다. 이유가 뭘까? 누가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보석 이미지
보석 이미지

<잠깐만>
다음 4명 중, 범인은 누구일까?

4명이 4각 테이블에 둘러앉아 보석을 감정하고 있었는데, 순간 정전이 일어나 10초 정도 암흑상태가 되었다. 잠시 후, 전등이 켜지고 난 후 4각 테이블 위를 보니 보석이 없어졌다. 누가 가져갔을까?
1) 정직한 정치인
2) 청렴한 변호사
3)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4) 양복 입은 신사
.
.
.
정답은 4) 번
1), 2), 3) 번은 현존(現存)하는 인물이 아니다.
(이 조크에 발끈하는 인물이 있다면? 100%다.^^) 

 

최참판댁 안내판,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댁 안내판,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가시적인 원상복구는 됐지만, 상인들과 지역주민들의 상흔이 회복되지 않은 화개장터를 뒤로하고, 박경리 문학관이 있는 최참판댁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페달을 밟으며 계기판을 보니, 지금까지 달린 거리가 727km였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과 여건상 최하위 차선의 오른쪽이나 갓길을 주로 달린다. 보통 이 정도 거리를 달리면 타이어 펑크가 한두 번은 꼭 나야 정상? 인데, 지금까지 무사통과한 것을 보면 기록적인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도로 위에 있었던 날카로운 물질들이 전부 쓸려갔거나 날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불행 중 다행인가? 아무리 얇게 베어내도 양면이 있는 걸 보면….

 

백의종군 안내판,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백의종군 안내판,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백의종군로(1~3)와 백의종군 길(4~5)의 거리 측정치.

1) 드론 직항이동 250km
2) 순천향대 고증 640km
3) 백의종군 신분 1,045km
 ※ 칠천량 해전 참패 이후, 방책을 세우기 위해 해안지방을 돌고 손경례가옥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되기 전날까지(6월 18일~8월 2일) 이동한 405km 포함.
4) 한국체육진흥회 670km
5) 필자 조성(구상) 700km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는 없던 길을 만들며 간 것이 아니고, 당시에 조성된 길들 중에서 목적지까지 ’최적화된 안전한(왜군을 피해서 이동) 길’을 찾아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4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를 따라간다는 것은 난중일기를 보며 곧이곧대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최적화된 안전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환생을 해서 과거에 써 놓은 일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 길을 간다 해도 과거와 꼭 같이 가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이유는 무단횡단, 담치기, 가택침입, 사유지 침범…. 더욱이 옛날 지도와 위성 지도를 대입해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지명과 지형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안전제일,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안전제일,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지금껏 백의종군로를 동영상 촬영하면서 내려왔지만, 국도와 지방도 그리고 터널과 시골길은 물론 아슬아슬한 외길과 둑길 등 위험천만한 구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그래서 난중일기 속의 백의종군로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와 우리의 후예들 그리고 세계인이 함께, 안전하게 즐기면서 재미와 의미와 성장을 함께 챙길 수 있는 길로 조성한 것이 [백의종군 길]이다.

[백의종군 길]은 다음의 3가지 특장점이 있다.
1) 역사적 난제와 현실적 문제를 걷어 낸 길.
2) 인근 주변의 유적지와 명소를 포함한 길.
3) 세계인과 함께할 대한민국의 ’버킷리스트‘.

혹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산티아고 길과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를 견주어 버금가거나 못지않은 길로 비교하지만, 그럴 순 없다. 역사적 스토리텔링으로만 봐도 산티아고 길이 꽃이면, 백의종군로는 꽃밭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산이고 후대에 물려줄 [백의종군 길]은 '클래스'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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