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댁 매표소,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댁 매표소,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를 빠져나와 박경리 문학관이 있는 하동의 최참판댁에 도착했다. 심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가 있다는 것은 관광객이나 탐방객들에게 돈을 받아도 될 만큼 조성과 관리가 되어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웠다. 관람권을 구매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지역 경제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하겠지….”
 
최참판댁은 소설가 박경리가 25년(1969년~1994년)에 걸쳐 5부작으로 쓴 대하소설인 ’토지‘의 마을이 세상 밖으로 나온 공간이다. 토지의 내용은 최씨 일가가 몰락하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박경리 생가는 통영에 있고, 박경리 문학공원은 원주에 있고, 박경리 문학관은 이곳 하동에 있다.  

<잠깐만>
전라도를 벗어나 경상도에 들어서니 퀴즈가 생각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의 그림”을 사자성어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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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최참판 조형물이 있는 공터,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 조형물이 있는 공터,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댁의 넓은 공터에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최참판이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고, 중앙엔 고목이 웅장하게 보이고, 왼쪽엔 정겨운 한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과 조경이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져 눈이 호강하고 가슴이 뻥 뚫린다. 

 

한옥 앞마당 박경리 프로필,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한옥 앞마당 박경리 프로필,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앞마당에 들어서니 박경리의 프로필이 벽보처럼 보이고, 이곳저곳 둘러보니 좋은 풍광과 좋은 포토존이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널려 있다. 포토존이나 맛집은 사람이 몰려드는 인기 방문지가 되는데, 외진 이곳까지 탐방객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최참판댁은 토목·건축 기술로 탄생한 요즘의 VR에 해당하는 명소이다.

백의종군로 탐방을 6개월 동안 준비하면서, 이곳 최참판댁을 면밀하게 탐방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이유는 최참판댁이 ’아날로그식 VR‘이 되어 국내의 명소가 되었다면, [백의종군 길]에 ’아날로그+스마트(AR 포함)‘ 환경을 장착하게 되면 세계인과 함께할 대한민국의 ‘버킷리스트’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참판 조형물과 필자,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 조형물과 필자,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들어갈 때는 무심하게 봤던 최참판 조형물이 보인다. 책을 펴고 공부하고 있는 최참판의 어깨너머로 눈동냥을 하기 위해 옆에 앉아보았다. 심안(心眼)으로 물끄러미 책을 쳐다보니, 책 속의 내용이 또렷하게 보인다.

“책을 많이 읽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아주 많이 읽어야 성공한다.”

 

최참판댁 영화의 벽보,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댁 영화의 벽보,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넓은 마당을 둘러싼 담장에는, 지금까지 이곳을 촬영세트장으로 활용하여 만든 영화나 드라마들의 포스터가 제작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우~와! 장소 사용료만 챙겼어도 얼마야? ^^

 

박경리 문학관 전경,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박경리 문학관 전경,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댁을 나와 조금 더 올라가니 박경리 조형물과 문학관 건물이 나온다.

 

박경리 문학관 내부,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박경리 문학관 내부,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박경리 문학관 내부는 그녀가 남긴 유품과 작품 그리고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된 물건들을 보니 생존해 있을 때보다 고인이 되고 난 후라 그런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는 생산이 안 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오히려 고인이 된 후에 진가(眞價)가 나타나서일 거다. 영원한 문학소녀 박경리.

 

박경리 조형물에 새겨진 글,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박경리 조형물에 새겨진 글,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최참판 조형물이 나올 때 자세히 보인 것처럼, 박경리 조형물도 나올 때 더 자세히 보인다. 뒷모습을 보다가 받침석에 있는 글을 한동안 쳐다봤다. 한참을….
평소에 돈독이 올라있는 나에게 해독이 되는 느낌이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문학관 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탐방지를 위해 지도를 검색했다. 하동의 흥룡마을, 두곡마을, 주성마을, 중촌마을 통과하여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있는 손경례가옥까지는 약 70km로 확인된다. 휴식과 간식을 포함하면 약 6시간 거리다. 출발!

 

 태극기
태극기

최참판댁과 박경리 문학관을 깊이 있게 면밀히 살펴보고 나니 [백의종군 길] 조성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이 더해진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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