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쉼터 전경,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쉼터 전경,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곳 단계리에 있는 이순신 쉼터는, 이순신 장군이 정유년 6월 2일 박호원의 농가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도원수 권율 장군을 만나기 위해 합천으로 가던 중, 아침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민폐(民弊)를 끼치지 않기 위해 단계마을의 중심을 통과하지 않고, 마을 옆으로 흐르고 있는 개천을 선택하여 지나갔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愛民精神)에서 나온 이러한 장군의 배려심(配慮心)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볼 수 있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언어였다.

 

이순신 쉼터의 장군 동상,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쉼터의 장군 동상,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이곳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서로 다른 점은 있다. 광화문 동상은 긴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고, 단계리 동상은 긴 칼을 왼손에 쥐고 있다. 필자는 광화문 동상으로 O.X 퀴즈를 내어 상품 주기를 수없이 많이 진행했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긴 칼을 왼손에 쥐고 있다?“
정답: X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콘셉트가 맞는 무기는 칼이 아니고 활이다.

 

이순신 쉼터의 거북선,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쉼터의 거북선,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영화 ’명량‘으로 인해 거북선에 이어 판옥선이 많이 알려졌는데, 당시 조선의 전선(戰船) 발전사를 보면, 과선(戈船)-> 맹선(猛船)-> 판옥선(板屋船)-> 거북선(龜船)이다. 과선은 전쟁을 치르기엔 부적합하여 맹선을 건조했고, 맹선은 적군이 쉽게 등선(登船) 하여 육박전(肉薄戰)을 할 수 있는 것이 약점이라 이것을 보완하여 만든 것이 판옥선이다. 하지만 판옥선도 적군들이 갈고리나 줄 사다리를 걸쳐서 등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판옥선 위에 뚜껑을 덮고 쇠꼬챙이를 박아 등선도 허락하지 않는 거북선이 탄생했다. 맹선이 버전(version) 1.0이면, 판옥선은 버전 2.0이고, 거북선은 버전 3.0이다.

당시 왜군은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거북선을, 귀선(龜船)이 아닌 귀선(鬼船)으로 여길 만큼 첨단 돌격선(突擊船) 이었다.

 

이순신 쉼터의 장군 추모탑,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이순신 쉼터의 장군 추모탑,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추모탑에 있는 건립 취지문이 잘 요약되어 있다.

= 추모탑 건립 취지문 =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맞아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해전에서 연전연승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조국과 겨레를 구한 민족의 성웅이다.
그러나 일본 측의 간사한 이순신 제거 계략과 조선 내부의 당파싸움에 따른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되어 28일간의 옥고를 치른 후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공이 백의종군한 기간은 1597년 4월 3일부터 8월 3일까지였다. 
그중 5월 26일부터 행로의 대부분은 우리 경남지역의 여러 곳에 머물렀으나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기간중 공은 오로지 왜군을 물리칠 전술과 조선수군의 재건 방향을 구상하는데 몰두하였다. 공은 조국과 민족에는 충성과 봉사를 부모와 자녀에게는 효성과 자애를 주변 사람에게는 정의와 창조 정신을 그리고 군인들에게는 필승의 신념과 탁월한 전략을 구현한 위대한 인물로 우리의 정신적 사표로 추앙받고 있다.
이에 경상남도와 교육청은 공의 충효 사상을 기리기 위해 백의종군 순례 과정을 개발하여 자라나는 청소년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이곳에 추모탑을 건립하여 충무공의 거룩한 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한다. 1997년

(백의종군한 기간: 1597년 4월 1일부터 8월 3일까지(120일). 필자 취지문 바로잡음)

 

삼가면 백의종군 행로지,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삼가면 백의종군 행로지,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경남 합천 ’삼가면‘의 전신(前身)은 ’삼가현‘인데, 신라시대의 삼기현과 가수현의 머리글자를 딴 합성지명이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도원수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 합천으로 가던 중 정유년(1597년) 6월 2일과 3일 유숙(留宿. 남의 집에서 묵음)했던 곳인데, 6월 2일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은 삼가현의 현감을 만나고자 했지만, 현감은 일본군의 재침을 대비해 산성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6월 8일 합천에서 권율 장군을 만나 백의종군하던 중, 7월 15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참패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원수(권율)와 의논을 거듭한 끝에 직접 해안지방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한 뒤 대책을 수립하기로 하고 노량을 향해 가던 중, 7월 18일 다시 이곳 단계리에 들려서 수행원들과 밤이 깊도록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하루를 유숙한 장소이다.

 

도로 위 안내석,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도로 위 안내석, 사진=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연약한 용기를 내어 서울 종각역에 있는 의금부를 출발하여 지금껏 달려왔는데, 드디어 백의종군 종착지인 합천(율곡)까지 28.7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질병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만, 건강은 잘 느껴지지 않아 소홀한 점이 많은 터에 여기까지 무탈하게 달려온 것에 감사하고, 얼마 남지 않은 길의 안전주행을 기원하며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데, 갑자기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이 떠오른다.

”테스형!(소크라테스) 인생이 왜~ 이래?“ 
- 애절하게 찾았지만 테스형은 묵묵부답….

필자도 따라해 보았다.
”테스형!(히포크라테스) 대한민국이 왜~ 이래?“
- 테스형으로부터 처방전이 내려온 것 같다. 조선제약의 ‘이순신 백신’을 접종하라고….
 

휴식, 그림=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휴식, 그림=전승훈 놀이문화원 이사장 겸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

<잠깐만>

사람이 100년을 살면, 심장은 몇 년을 일할까?
.
.
.
50년.

한번 박동하고 나면, 다음번 박동까지 심장은 쉬고 있다. 만약, 심장이 중간마다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한다면? 생일이 사망일이 된다.

한 시간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보다 한 시간 내내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이 더 힘들다. 이유는, 걸어갈 때는 한쪽 발이 체중(하중) 전체를 받지만 교차하면서 하중 없이 한 발씩 차례로 쉴 수 있고, 서서 있을 때는 체중의 반만 받지만 쉴 틈이 없어 피로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일(오른발)과 휴식(왼발)은 조화(교차)를 이루어야 한다. 휴식은 대나무의 마디와 같아서, 높이 올라가게 해주고 거센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게 지탱해준다. 또 휴식은 우리의 지치고 고장이 난 몸을 수리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일을 실수 없이 빨리 끝내게 해준다. 그래서 일을 잘하려면 잘 쉬어야 한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길에 피곤함에 지친 일행과 말을 위해 적당한 거리나 시간을 선택하여 쉬거나 유숙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잘하는 것’과 ’잘 쉬는 것‘은 한 지붕 두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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