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듯했다.” 소설 ‘설국(雪國)’의 고향인 니가타(新潟)만 못해도 눈이라면 몸서리칠 만큼 많이 내리는 눈 고장이 일본 혼슈(本州) 북동부 아키타(秋田)다. 1년의 절반 가까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생 볼 눈을 다 봤다”라고 탄성을 자아낸다. 이곳의 눈은 눈송이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내려 “눈 내린다”며 밖을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아키타(秋田)는 눈의 나라다. 한 번 눈이 내렸다하면 한나절에 내리는 적설량이 자그마치 20∼30㎝. 연평균 적설량이 7∼8m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렸다하면 사람 키 몇 배가 넘는 눈이 쌓인다. 주차된 차 위로 고개를 한창 올려봐야 겨우 하늘이 보일 정도다. 정해진 길이 아닌 샛길로 잘못 들어섰다가 사람 가슴팍까지 눈에 파묻히는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의 도로나 주차장에는 아예 바닥에 따뜻한 온수가 나오는 곳도 있다.

아키타는 눈만큼 유명한 것이 온천(溫泉)이다. 험난한 지역 탓에 예전부터 살기 힘든 이 지역에 신은 온천이라는 선물을 했다. 물 좋기로 유명한 이 지역에는 풍부한 원천(源泉)을 따라 아담한 야외온천이 딸린 료칸(일본 전통 여관)이 흔하다. 이 중에는 100년이 훨씬 넘는 료칸도 많다. 료칸을 평가하는 기준은 네 가지다. 물(수질과 수량), 음식(가이세키 요리), 시설(객실), 풍치(노천탕)인데 아키타의 온천은 대부분 낡은 시설만 제외하고는 모든 게 훌륭한 풍치온천이다.

아키타현의 유명 온천단지로는 단연 뉴토온천향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이곳은 뉴토산 1,500m 기슭에 자리해 일반인에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아 비탕(秘湯)으로 불린다. 한번 사용한 온천수를 재활용하지 않고 흘려버릴 정도로 원천이 풍부해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유황 온천 지구다. 거리 곳곳에는 무료로 발을 온천수에 담글 수 있는 족탕(足湯)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뉴토온천향은 부인병, 당뇨병,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나면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방문이 많다. 뉴토온천향에 있는 숙박시설에 숙박하여 ‘유메구리(湯めぐり)수첩(1,500엔)’을 구입하면 뉴토온천향 7곳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유효기간은 1년. 수첩을 구입하지 않고 당일치기 온천 이용시는 각각 500∼700엔 정도를 내야 한다.

뉴토온천향에서도 가명 유명세를 탄 곳은 츠루노유(鶴の湯)다. 뉴토온천향 중 가장 오래된 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온천으로 날개를 다친 학이 날아와 상처 부위를 온천물에 담그고 치료했다는 전설이 있다. 역대 아키타 번주들이 치료를 위해 이곳을 이용했다. 새(띠·억새 등)로 지붕을 인 경호무사의 숙소였던 본진(本陣)은 그 상태 그대로 숙박동(宿泊棟)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녀 혼숙 야외온천 외에도 여성전용 야외온천, 그리고 백탕(白湯), 흑탕(黑湯) 등 8개의 온천을 갖고 있다.

온천의 정면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다. 온천 소개하는 팸플릿에는 ‘온천에 들어가서 밖을 바라보면 맑은 날도 좋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도 좋다. 시간이 흘려가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삼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사스래나무로 둘러싸인 온천의 뜨끈한 몸에 몸을 담그면 저릿하면서 금세 노곤해진다. 수증기 때문에 몽롱함이 더해지지만 코끝이 시릴 만큼 차가운 바깥 공기에 정신은 맑기만 하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 김태희가 머물러 더 유명해졌다.

츠루노유에서 택시로 17분 거리에 나머지 6개의 온천이 모여 있다. 다에노유(妙乃湯), 가니바(蟹場), 오오가마(大釜)는 도보로 5분 내에 위치해 있고, 그 외 3군데의 온천(규카무라, 구로유, 마고로쿠)은 도보 15∼30분 내에 위치해 있다. 각각의 온천은 다른 천질(泉質)과 숙박시설, 식당을 갖추고 있어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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