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기자, 군복무했던 철원 25년 만에 다시 가보니

1 남방 한계선 바로 밑에 있는 ‘끊어진 금강산 가던 철교’. 예전에는 서울에서 이 길로 금강산 구경을 다녔다.

강원도 철원은 최전방 지역이다. 휴전선 155마일(248㎞) 중 30%가량인 44마일(71㎞)이 철원에 걸쳐 있고 여전히 철원 땅의 절반 정도는 민통선 지역으로 묶여 있다. 민통선을 경계로 철원을 여행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민통선 바깥 지역은 아무 때나 걸어서도 돌아다닐 수 있지만 민통선 안쪽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코스를 자동차로만 이동할 수 있다.

북상한 민통선 … 반나절 걸어야 제대로 구경

2 철원 노동당사. 분단을 상징하는 건물이다.3 소이산 지뢰꽃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철조망에 평화를 기원하는 리본이 묶여 있다
민통선은 고정돼 있는 게 아니었다. 25년 전보다 철원의 민통선은 북쪽으로 2~3㎞는 더 올라가 있었다. 알아 보니 민통선 지역을 줄여달라는 철원 주민의 민원 때문이었다.

민통선 바깥, 다시 말해 남쪽은 아무 때나 걸어서 여행할 수 있다. 김용순(56) 문화관광해설사는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비경이 철원 곳곳에 숨어 있다”며 “꼭 반나절 정도는 걸어서 철원을 여행하라”고 권했다.

철원의 순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있다. 2011년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가 지정한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지뢰꽃길’ 4.8㎞ 구간과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한 ‘철원 쇠둘레길’ 19.1㎞ 구간이다. 어느 부처가 조성한 길이든 철원의 길은 해설사의 말마따나 자연이 주인이었다. 논에는 물방개가 쉴새 없이 물질을 하고 있었고, 무당개구리가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저수지에는 백로·왜가리 등 여름 철새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소이산(362m) 허리를 한 바퀴 도는 길의 이름은 지뢰꽃길이다. 철원 출신 정춘근(71) 시인이 지뢰 밭에 핀 이름 모를 꽃
4 소이산에는 지뢰를 제거한 후 만든 둘레길이 있다. 이름하여 지뢰꽃길이다.
을 노래한 시 ‘지뢰꽃’에서 따왔다. 지뢰꽃길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소이산은 지뢰 때문에 위험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지뢰가 묻혀 있어 길을 따라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지뢰 표지판을 보며 걷자니 겁이 나기도 했지만, 60년 가까이 출입이 통제된 덕분에 키 큰 나무가 우거져 있어 초여름에 걷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철원 쇠둘레길은 1코스 한여울길(8.3㎞)과 2코스 금강산 가는 길(10.8㎞)로 나뉘어 있었다. 한여울길은 승일교에서 시작해 칠만암까지 이어져 있었다. 길이 낯익다 했더니 20여 년 전 군대에서 행군할 때 걸었던 길이었다. 옛날에는 먼지 날리는 흙길이었지만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그러나 한탄강의 비경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니, 그때 보지 못했던 풍경이 지금은 눈에 들어왔다. 20여 년 전 ‘빡빡머리’ 청년의 모습이 한탄강물에 비치는 듯했다.

한여울길이 시작하는 승일교(承日橋)는 남북한이 합작한 다리다. 북한이 북쪽으로 밀려나는 바람에 완공하지 못한 다리를 1952년 미 공병대가 마무리했다. 그래서 남쪽과 북쪽의 교각이 다르게 생겼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최초로 3·8선을 돌파했던 6사단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송대소부터 ‘엄태웅 광장’까지 약 700m 구간은 정말 아름다웠다. 27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주상절리가 내내 이어졌다. “한여울길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구간”이라는 김용순씨의 자랑이 과장이 아니었다. 참, 탤런트 엄태웅은 철원군 홍보대사다.

직탕폭포를 지나 1시간쯤 더 나아가니 철원 쇠둘레길 2코스인 금강산 가는 길이 나왔다. 철원에서 출발해 내금강까지 달렸던 금강산 전철길을 엮어서 만든 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지은 학저수지, 국보 63호 철조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도피안사가 길가에 있었다. 농로를 따라 2시간쯤 걸으니 노동당사가 나왔다. 김용순씨가 노동당사 건물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노동당사 옆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철원 경찰서가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악명 높은 건물이어서 철거한 게 아니라 전쟁 직후 먹고 살 게 부족했던 주민이 철근을 내다 팔려고 부순 거였죠. 노동당사는 벽돌로 지은 덕분에 살아남았지요.”

1994년 서태지 뮤직비디오 ‘발해를 꿈꾸며’의 배경으로 나온 뒤로, 노동당사는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노동당사 앞 광장에서 종종 평화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오는 22일에도 강원도가 주최하는 ‘DMZ 60주년 평화·생명 음악회’가 열린다.

5 남북이 각각 건설해 만든승일교. 남쪽과 북쪽의 교각 모양이 다르다.6 송대소에서 바라본 한탄강 주상절리.7 직탕폭포 앞 한탄강에서 철원 주민이 그물을 던지고 있다.8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석정.

하루 네 차례만 허락된 민통선 드라이브

민통선 안으로 자가용을 운전해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군생활 했을 때는 정말 살벌한 곳이었는데, 세월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름하여 민통선 드라이브 여행이지만, 여전히 지켜야 할 게 있었다. 하루 네 차례로 고정된 출발시간에 맞춰 차량 전부가 긴 행렬을 이루며 이동해야 했다. 고석정 관광단지에 있는 철의 삼각전적지 관광사업소에서 시작해 제2땅굴~평화전망대~월정리역을 돌아서 나오는 데 3시간 남짓 걸렸다. 철원군청은 지난해 민통선 안으로 여행을 온 인원이 20만 명이나 된다고 소개했다. 많으면 하루에 1500명이 오기도 했단다.

모내기가 끝난 철원평야를 지나 10여 분을 달리니 군 검문소가 나왔다. 여기서부터 민통선이 시작한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왔지만 군생활 때의 기억과 달리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했다. 김용순씨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한이 심리전 방송을 하지 않기로 한 뒤로 조용해졌다”고 귀띔했다.

군용 차량보다 자가용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논 한쪽 구석에는 승용차가 한두 대씩 꼭 서 있었다. 김용순씨가 “1980년대까지는 민통선 안에서 농사짓는 주민들이 자전거를 많이 탔고 90년대에는 오토바이를 많이 탔지만, 요즘엔 모두 자가용을 몰고 논으로 출근한다”고 소개했다.

9 제2땅굴 입구.
잘 닦인 포장도로를 따라 제2땅굴에 도착했다. 1시간 안에 무장병력 1만6000명이 내려올 수 있는 땅굴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괜스레 으스스했다. 다음 행선지는 평화전망대. 남방한계선과 붙어 있는 곳으로 넓은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부터 백마고지, 피의 능선, 김일성고지, 봉래호 등 휴전선 너머 북한 땅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직접 가서 보지는 못하지만, 남방한계선 너머 비무장지대에 궁예(?~918)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이 자리 잡고 있을 터였다. “일제 강점기에만 해도 유적이 여럿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모두 파괴되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고 김씨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열차역, 월정리역에 도착했다. 녹슨 기관차와 함께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표지판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 그 표지판은 지난해 11월 민통선 아래에 지은 백마고지역으로 옮겨져 있다. 민통선 밖으로 나오자 해설사의 갈무리 설명이 더해졌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을 사수하기 위해 수많은 장병이 전사했습니다. 그 많은 목숨을 바쳐 지켜낸 땅이 철원입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철원으로 오시면 그 혼과 얼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 지점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설정하고, 그 사이 4㎞ 안에서는 무장 통행을 금지한 지역.

민통선: 민간인 통제선의 준말. 비무장지대 남쪽으로 5∼15㎞ 지역에 가상의 선을 긋고 선 북쪽으로는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역 주민의 민원으로 민통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기사제공=중앙일보 | 글=이석희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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