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트레킹①] 스위스의 여름은 아름답다. 얼굴을 들어보면 머리에 희 눈을 인 거봉(巨峰)들이 우뚝 솟아 있다. 아래로 내려 보면 그곳은 초록의 향연이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목초지는 산의 정상부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겨울과 여름, 빙하와 초원….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이색적 풍광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이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의 묘미다.

트레킹 첫날. ‘알프스의 여왕’이라는 마터호른을 품고 있는 체르마트에 도착했다.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로고로 유명한 마테호른 봉우리를 품에 안고 있는 체르마트는 스위스 알프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역이다. 환경오염을 염려해 휘발유 차량은 전면 출입금지. 간간이 전기자동차와 마차가 운행되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친환경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역에서 내리는 순간 “아, 공기가 정말 맑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코끝에 찡하게 전해지는 맑은 기운(공기)은 체르마트의 전매특허다. 얼마 전 한 케이블TV에서 방영한 ‘꽃보다 할배’에서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체르마트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무척 작은 편이다. 5성급 호텔도 하나밖에 없다. 기차역에서 우체국 쪽으로 뻗은 대로가 그나마 가장 번화한 거리다. 대략 400m 내외. 호텔과 레스토랑, 상점들이 이 거리에 모여 있다. 상점 중에는 시계점과 등산용품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스위스가 ‘시계와 알파인의 나라’이기 때문에 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체르마트는 스위스 등산의 메카다. 4,000m급 명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1년 내내 웅대한 알프스의 산들과 빙하를 만끽할 수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약 400㎞에 이르는 하이킹 코스가 인기이며, 겨울에는 스키어들로 북적인다. 이전에 동양에서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았지만, 최근 한국인들의 방문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그 뒤를 중국인들이 바짝 쫒아오고 있다.

첫날은 마테호른 전망이 가장 좋다는 오버로트호른(3,415m)에 가기로 했다. 먼저 체르마트에서 수네가 파라다이스로 이동했다. 체르마트에서 등산열차로 3분이면 수네가 정상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해발 2,300m 고지에 위치한 전망대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고봉의 호위를 받으며 마시는 커피는 달콤하다. 수네가에서 다시 공중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로트호른에 오를 수 있다. 해발 3,100m로 수네가보다 더 멀리 조망할 수 있다. 오르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로트호른역에서 오버로트호른까지는 오롯이 걸어서 올라야 한다. 경사가 만만치 않다. 고산증을 염려해 대략 2시간을 잡으면 된다. 천천히 걸으면서 한 번씩 뒤돌아보면 마테호른이 건너편에서 그 웅장한 자태로 묵묵히 쳐다본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에는 군데군데 양떼들의 변설물이 보인다. 오버로트호른 정상에는 인간의 눈처럼 생긴 표지판이 세찬 바람에 제자리에 붙어 있지를 못하고 빙그르 돌고 있다.

정상에서 인정 사진을 찍고, 식사를 위해 플루할프산장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이라고 자만하면 곤란. 거머줄처럼 얽힌 내리막길이라 자칫 산장을 지나칠 수 있다. 대략 1시간을 걸어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트레킹을 마친 유럽 등산객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곳에서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여유있는 식사를 즐긴다. 꿀맛이다. 내 자신이 알프스에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슈텔리제 호수로 향했다. 거꾸로 투영된 마테호른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바람이 일어 호수물결에 미세한 파도를 일으킨다. 저 멀리 마테호른도 어느덧 구름이 가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날씨가 야속하기만 하다. 호수 옆의 블라우헤르트역(2,571m)에는 등산객이 없다. 갑작스러운 날씨변화에 관광객들이나 등산객들이 서둘러 하산했기 때문이다. 역무원이 수네가 파라다이스에 케이블카를 요청했다. 손님이 없으니 이렇게 일정한 손님이 모이면 운행하고 있다. 케이블에 몸을 맡기자, 이내 피로가 몰려왔다. 알프스 고산연봉들이 지는 석양에 황금색으로 물들어간다. 아, 여기가 스위스 알프스이구나. 그리고 지금 내가 이곳에 있구나. 행복이 시나브로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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