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심에 비가 오는 날이면, 빌딩의 우중충한 색깔이 더욱 도드라져 마음마저 가라 앉게 한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비오는 도심에서도 우중의 낭만을 즐길만한 장소다 곳곳에 있다.

비는 산수풍경을 그리는 붓이다. 장대비로 계곡물을 그리고, 궁궐 낙숫물은 단단한 돌에 홈을 파낸다. 빗물은 초목의 갈증을 해소하고, 차갑게 열린 하늘 아래 포근한 흙냄새를 풍긴다. 도심에 내리는 비는 빼곡한 공간에 여백을 만들어 청량한 빗소리로 그 풍경을 채운다. 34만 490㎡(10만 3000여 평)에 달하는 창덕궁 후원의 자연은 그렇게 깨어난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을 걷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이다. 차분하게 깊어진 궁궐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자료출처:문화체육관광부) 도심 우중 산책의 완벽한 코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면 인왕산 수성동계곡으로 발길을 옮기자. 도심 우중 산책의 완벽한 코스다. 안평대군과 조선 선비들은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장단 삼아 시를 읊조렸다. 냇가에 돌덩이를 들추고 숨은 생명을 찾아내듯이, 비는 멈춘 듯한 풍경을 움직인다. 수성동계곡이 있는 서촌은 윤동주 하숙집 터와 통의동 보안여관, 대오서점 등 한국 근현대사가 곳곳에 남았다. 우산을 쓰고 숨바꼭질하듯 그 발자취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햇빛이 뜨거울땐 그늘을 찾게되고, 비가오면 우산을 찾지만, 가끔 우중 도심을 걸으며 즐기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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