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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의 ‘알·신·잼·sea' (22)- 알고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 스물 두 번째 -
고명석 해양경찰 교육원장  |  baccronews@bacc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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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3  12: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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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명을 잉태했던 근원이며, 생명체에 필수적인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날씨를 조절하며 수많은 자원을 품고 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약 70.8%를 차지하는데, 이는 육지 면적의 2.43배이며 부피는 13억 7천만 km3에 이른다. 그리고, 바다는 지구에 남아있는 마지막 미개척지로 인류가 탐사한 심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탐사하지 못한 나머지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는 위험한 곳이라고 잠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위험하니까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배를 타는 것 자체를 위험시하는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모아 해양개발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다. 세계는 해양을 미래자원의 보고(寶庫)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양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법칙이 오늘날에도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정보신문 ‘바끄로’는 우리가 꼭 개척해야 할 바다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바다 전문가의 재미있는 바다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바다를 지키며 우리 바다의 치안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해양경찰교육원의 고명석 원장이 들려주는 미래자원의 보고(寶庫) 바다와 얽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를 통해 바다와 좀더 친숙해 보자.  -편집자 주-

   
▲ 해양경찰교육원 고명석 원장

해적인가? 제독인가? 바다의 奇人, 드레이크

역사상 최초의 세계 일주는 포루투갈 마젤란의 항해였다. 마젤란 일행(5척 237명)은 1519년부터 3년간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항해하고 괌・필리핀을 거쳐 귀항하였다. 하지만 선장이던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사망하였고, 항해 중 식량부족과 괴혈병에 시달리며 돌아온 일행은 18명뿐이었다. 후대에 명성을 남기기는 했으나 당사자들에게는 처참한 결말이었다.

   
▲ (자료출처:Google) 마젤란(포루투갈)과 드레이크(영국)의 세계일주 항해도

이에 반해 두 번째로 세계를 일주한 이는 그 자체로는 조명받지 못했지만, 화려하고 유쾌한 결말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주인공은 유명한 해적이었던 바다의 기인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였다. 그의 함대가 영국을 출항,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과 태평양을 거쳐 돌아온 것은 마젤란과 비슷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일주는 마젤란과 같이 탐험 정신이 불타는 역경의 항해가 아니었다. 

드레이크의 이름 앞에는 “해적, 제독, 전쟁 부사령관, 탐험가, 시장, 귀족“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흥미로운 점은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이 의미상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이다. 「해적왕」이었던 사람이 해적을 잡는 「제독」이 되었다거나, 미지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마을의 「시장」을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막대한 부와 명예뿐 아니라 고귀한 귀족 신분까지 얻었고, 해적으로서 명성을 떨쳤는가 하면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던 영웅 「드레이크」. 일생을 바다에서 활동했고, 바다에서 생을 마쳤던 괴짜 항해가. 그의 드라마틱한 삶의 궤적을 쫓아가 보자.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1563~1596년 사이였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100년 정도가 지난 때로, 스페인이 유럽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보통 영국을 「해가 지지않는 제국」이라 말하지만, 16세기 당시 이 명칭이 어울리는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이베리아반도,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와 독일의 일부,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 오스트리아 등을 다스렸다. 또 아메리카 대륙 전체, 필리핀, 아프리카 여러 곳에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카톨릭의 맹주였다.

또한 신대륙과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무역이라기보다는 자원을 착취하고 수탈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무튼 스페인은 신대륙으로부터 가져온 막대한 금과 은을 기반으로 튼튼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 위에 무적함대(아르마다)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 (자료출처:flickr.com) 영국 폴리머스에 있는 드레이크 동상

반면, 16세기 영국은 왕실 수입이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밀라노 공국의 재정에도 못 미칠 정도로 가난했다. 변변한 군대를 보유하지 못했고 식민지도 없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인 헨리8세가 카톨릭을 버리고 신교를 만드는 바람에 교황과 스페인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영국은 변방의 작은 섬나라 정도로 여겨졌다.  

이 시기 드레이크는 영국 농촌에서 태어났다. 열 살을 넘겼을 무렵부터 이미 항해에 종사했다. 스무 살이 되어서는 친척이자 노예무역상인 존 호킨스(John Hawkins) 밑에서 일했다. 호킨스는 스페인 왕실이 독점하던 아메리카 무역에 끼어들어 밀무역(密貿易)을 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싣고 스페인령 아메리카에 상륙하여 팔고, 몰래 물건을 유럽으로 들여와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한 사건이 발생했다. 호킨스 선단은 멕시코 베라크루스 부근에서 인질을 교환하자는 약속을 파기한 스페인 해군의 기습을 받았다. 선단은 괴멸되었고 드레이크는 목숨만 겨우 건져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 경험은 그가 평생 스페인에 대한 복수심을 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식민지를 선점한 스페인은 신대륙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약탈해 가져왔다. 이에 따라 그러한 배를 노리는 해적들이 카리브해 곳곳에 활개를 치게 되었다. 그중에서 호킨스나 드레이크는 스페인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으며, 스페인 왕실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이들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여왕은 겉으로는 처벌을 약속했지만, 속으로는 처벌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여왕은 해적 행위를 부추기며 지원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 왕실은 제대로 된 해군을 운용할 재정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드레이크와 같은 사략선(私掠船, privateer ship)을 이용하면, 세금을 쓰지 않고도 상대국을 제압할 수 있고, 동시에 탈취한 보물은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되므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또한, 드레이크로서도 미천한 해적이 왕실로부터 공인을 받고 활동을 하는 것이니 노획물의 일부를 왕실에 상납하는 정도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런 연유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드레이크에게 사략(私掠, privateering) 허가장을 주었다. 사략 행위는 국가로부터 허가장을 받은 개인이 선박을 무장시켜 상대국의 배를 노략질하는 것을 뜻한다. 적성국에 대한 전투 행위와 해적 행위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드레이크는 이런 사략 행위의 달인이었고, 엘리자베스는 그를 후원하는 사실상의 해적 여왕이었다.

   
▲ (자료출처:stock.adobe.com) 드레이크가 탔던 골든 하인드호

1570년 이후 드레이크는 카리브해의 스페인 선박이나 식민지 마을을 습격하는 등의 사략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드레이크의 사략 행위 정점은 앞서 소개한 세계 일주에서였다. 1577년 드레이크는 「골든하인드(Golden Hind)호」를 타고 영국 남부의 플리머스 항을 출항하였다. 대서양에서 남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 해협을 거쳐 태평양까지 진출했다. 

그리고는 칠레, 페루 연안을 통해 북상하면서 스페인 식민지나 배를 닥치는 대로 덮쳐, 막대한 재물을 약탈했다. 그중에는 스페인 왕실의 보물을 실은 카카푸에고(Cacafuego)호도 있었다. 카카푸에고호에는 은 26톤, 금 36kg 등 90톤 가량의 재물이 적재되어 있었고, 이것들을 옮겨 싣는 데만 나흘이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막대한 보물을 탈취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이제 영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하였다. 아메리카 서안을 따라 지금의 캘리포니아까지 올라간 함대가 유럽으로 돌아가기 용이한 항로는 왔던 길을 되짚어 대서양을 건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막강한 스페인 함대가 곳곳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마젤란도 세계 일주를 했는데 나도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태평양을 건너 인도항로로 향했다. 드레이크의 세계 일주는 탐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스페인의 배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도주로였다. 

   
▲ (자료출처:stock.adobe.com)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우여곡절 끝에, 1580년 골든 하인드호는 영국으로 귀항했다. 배에는 스페인으로부터 약탈한 금은보화가 쌓여있었고, 곧 여왕에게 바쳐졌다. 그 가치는 당시 영국의 국고 세입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여왕은 플리머스 항으로 직접 나왔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무릎을 꿇은 드레이크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드레이크를 처벌하라는 스페인의 요구를 들어주려는 것일까? 하지만 칼을 높이 치켜든 여왕은 칼로 드레이크의 목을 내려치는 대신 양어깨에 얹었다.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 것이었다. 여왕으로서 자존심은 있었지만, 가난한 나라의 군주였던 그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침몰하는 스페인 무적함대_루터버그

이 일로 인해 1588년 영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일어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카톨릭을 배척하는 엘리자베스가 필리페 2세의 청혼을 거절하였고, 스페인의 영지였던 신교국가 네덜란드의 반군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여왕의 행동은 결국, 유럽 최강국 군주이며 카톨릭의 신봉자였던 필리페 2세의 분노를 폭발하게 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오히려 드레이크가 영국의 영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스페인은 최강의 육군과 무적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영국은 변변한 군대가 없어, 전쟁이 일어나면 제후들에게 징집하는 정도였다. 만약, 스페인 육군이 영국에 상륙한다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을 여왕도 알고 있었다. 영국으로서는 바다에서 적을 막아내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드레이크는 전쟁을 책임지는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당시 해상 전투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늘어선 양 진영의 배가 가까워지면 함포 사격을 벌이다가, 더 근접하면 적군의 배에 뛰어올라 육박전을 치르는 식이었다. 육군이 강한 스페인이 해군도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 (자료출처:위키피디아) 드레이크가 군함으로 이용한 “레이스 빌트 갤리온”

하지만 해적 생활을 통해 자유분방하고 과감했던 드레이크는 생소하지만 혁신적인 전투방식을 시도하였다. 먼저, 중무장과 기동성이 뛰어난 ”레이스 빌트 갤리온(race-built galleon)”을 사용하였다. 당시 짐을 많이 실은 카락선이 무게중심이 높아 기동성과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한 것이다. 길고 날렵한 이 배는 방향 전환이 빠르고 기동력이 좋을 뿐 아니라, 함포를 대량으로 설치하였다. 또한, 그는 무겁고 비싼 청동 대포 대신 철제 대포를 개량하여 사정거리 확장하였다. 

영국 함대는 근접전을 펼치지 않고, 일정 거리로 떨어져 포격전을 전개했다. 전면전을 피하고 빠른 기동성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식 전술을 구사하여 무적함대가 제대로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와 함께, 드레이크는 불붙인 배를 칼레항에 정박 중인 스페인 진영으로 밀어 넣는 기상천외한 공격을 펼쳤다. 스페인 함대는 갑작스러운 화공에 혼비백산하여 무적함대의 대표 전술인 초승달 대형이 무너지며 흩어졌다.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무적함대는 침몰하기 시작하였고, 영국-스페인 전쟁은 막을 내렸다. 

   
▲ (자료출처:flickr.com)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포스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해골문양의 「졸리 로저(Jolly Roger)」 깃발을 달고 약탈을 일삼는 수많은 해적이 출현한다. 특히 영화에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잭 스패로우 선장'은 비열한 이기주의자로,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천방지축의 행동을 하지만 멋지게 목적을 달성해낸다. 해적으로서의 활약상이나 독특한 개성을 생각하면, 드레이크는 잭 스패로우 선장과 맞아떨어지는 캐릭터이다. 

한편으로 드레이크의 해상 전투를 보면, 비슷한 시기의 이순신 장군을 보는 듯하다. 방향 전환이 용이한 판옥선에 함포를 대량으로 설치하여 포격전으로 적을 제압한 것이나, 바다의 조류를 전투에 적절히 이용한 것은 바다를 잘 아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왜적으로부터 바다를 지킨 이순신 장군에게 「성웅(聖雄)」이라는 존칭이 멋지게 어울리는 것처럼, 영국의 바다를 지켜낸 드레이크도 영국 왕실이 기사에게 수여하는 「Sir(경)」라는 존칭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해적 잭 스패로우의 경박하고 이기적인 이미지와 이순신 장군의 근엄하고 장중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바다의 괴짜」, 드레이크경.

그는 과연 약탈을 일삼던 해적인가? 나라를 구한 제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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