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 산책로,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산책로,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입구,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입구, 사진=박종철 기자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커다란 능이 반긴다. 도심 곳곳과 외곽에도 도로 옆 주택가에도 작은 언덕 같은 고분이 눈에 띈다. 저 무덤의 주인은 누구일까?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는 왕들의 꿈이 묻혀 있는 능의 도시이다. 이 곳에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경주의 역사는 곧 신라의 역사이다.

대릉원은 천년고도 경주에 산재한 고분군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신라 왕과 왕비 귀족의 무덤 23기가 모여있는 동산이다. 그중에 천마총과 황남대총, 신라 최초로 김씨 왕에 오른 미추왕릉이 유명하다. 대릉원의 이름은 “미추왕이 재위 23년에 돌아가니 대릉에 장사지냈다”라는 삼국사기 기록에서 유래했다. 시내 한복판 황남동에 위치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주시는 오는 5월부터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대릉원을 무료 개방할 예정이다. 

 

대릉원 천마총으로 졸업여행 온 국제유치원,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천마총으로 졸업여행 온 국제유치원, 사진=박종철 기자
천마총 전시관 금관과 금허리띠 금신발, 사진=박종철 기자
천마총 전시관 금관과 금허리띠 금신발, 사진=박종철 기자

천마총은 1973년 발굴 조사 중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天馬)이 그려진 말다래가 출토되어 붙여진 무덤 이름이다. 당시 천마도와 함께 금관 금모자 금제 허리띠 등 국보와 1만 15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고분 주인이 왕임을 확신할 수 없어 '천마도 왕릉'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천마총'이라고 부른다. 천마총은 무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복원하고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 곳이다. 

2월 7일(화) 김해시 소재 국제유치원 150여 명이 대릉원으로 졸업여행 왔다. 7살 어린이들이 무덤 안에서 금관에 호기심을 갖고 쳐다본다. 국제유치원 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 신라를 보여주기 위해 오전에 불국사를 방문했다. 천마총 견학 후 국립경주박물관을 관람하고 김해로 돌아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박영철 해설사는 “천마총 금관은 전형적인 신라 금관 형태로 앞에 솟아 있는 山자 모양의 세 줄기 나뭇가지는 영토확장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릉원 황남대총,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황남대총,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검총, 사진=박종철 기자
대릉원 검총, 사진=박종철 기자

황남대총은 황남동에 있는 신라 최대의 고분이라는 뜻으로 두 개의 고분이 표주박 모양으로 연결된 쌍분이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 조사하여 금관 금제 허리띠 금목걸이 등 국보와 5만 7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거대한 쌍분 사이에 목련나무 포토존이 인기 있다. 미추왕릉 서쪽에 위치한 검총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첨성대, 사진=박종철 기자
첨성대, 사진=박종철 기자
석양이 비친 첨성대, 사진=박종철 기자
석양이 비친 첨성대, 사진=박종철 기자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 관측대 첨성대가 북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아래쪽이 배부르다가 위로 갈수록 홀쭉해지는 술병 모양의 우아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국보 첨성대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특별하다. 정인숙해설사는 “일제시대에 첨성대 바로 옆으로 길을 냈다. 이후 6.25 전쟁 때 탱크와 전쟁물자를 수송하는 화물차가 다녀 도로가 침하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첨성대는 한국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 1년을 상징하는  365개 내외의 돌로 회반죽 없이 약 9m 높이로 쌓았다.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제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한다.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박종철 기자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박종철 기자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박종철 기자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박종철 기자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박종철 기자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박종철 기자

첨성대에서 동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약 10여 분 정도 걸어 동궁과 월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신라 왕궁의 별궁터로 왕자가 거처했고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장소다. 조선 시대 폐허가 된 월지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로 불리었다.

어둠이 내리자 세계문화유산 동궁과 월지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누각과 소나무가 조명과 함께 연못에 반영되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한다. 오리 떼가 컴컴한 호수에서 놀고 있다. 최순옥해설사는 “월지에는 사계절 오리가 많다. 겨울에 얼음이 얼면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얼음가에 일렬로 쭉 앉아 있어 측은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제30대 문무왕은 재위 14년(674)에 월지를 조성했고 676년 삼국을 통일했으며 679년 동궁을 지었다. 제56대 경순왕은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자 931년 고려 태조 왕건을 동궁에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고 935년 신라를 고려에 넘겨주었다. 이로써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건국한 신라는 99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황리단길, 사진=박종철 기자
황리단길, 사진=박종철 기자
황리단길, 사진=박종철 기자
황리단길, 사진=박종철 기자
황리단길 효자 손시양 정려비, 사진=박종철 기자
황리단길 효자 손시양 정려비, 사진=박종철 기자

황리단길은 경주에서 누구나 다시 찾고 싶은 가장 젊은 길이다. 내남네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교 네거리까지의 도로 양쪽 황남동, 사정동 일대의 지역을 일컫는다. 노동리·노서리고분군, 대릉원, 내물왕릉, 무열왕릉, 김유신묘 등이 커다랗게 주위를 감싸고 있다. 황남시장과 중앙도서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경주빵 황남빵 십원빵 꿀호떡 쫀드기 옥수수 등 주전부리와 맛집이 즐비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사진관 한복점 기념품 가게들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 사진 촬영 : 2월 7일(화), 8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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