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 사진=고희수 기자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 사진=고희수 기자
유달초등학교(구 공립 심상소학교), 사진=고희수 기자
유달초등학교(구 공립 심상소학교),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 영사관),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근대역사관 1관(구 일본 영사관),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부 청사 서고와 방공호,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부 청사 서고와 방공호,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유달초등학교에서 번화로를 따라 목포역 방향으로 걸었다. 거리가 조용하고 깨끗하다. 근대 시기에 들어선 일본식 가옥과 상가 병원 백화점 은행 동양척식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97년 목포가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하며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류지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민중의 저항이 펼쳐진 공간이자 현대까지의 생활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서 전국 최초 면 단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근대역사관에 가면 목포의 모두를 볼 수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은 목포 개항 때 일본이 영사업무를 위해 1900년 완공한 건물이다. 광복 이후 목포시청, 목포 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활용되다가 2014년부터 목포 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했다. TV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 후 젊은이들도 많이 찾고 있다. 뒤쪽에는 일제강점기 목포부 청사 서고와 직접 들어가 체험할 수 있는 방공호가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구 동양척식 목포지점),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근대역사관 2관(구 동양척식 목포지점), 사진=고희수 기자

2월 23일(목) 목포근대역사관 2관이 리뉴얼 공사로 휴관 중이다. 전신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해방 후 대한민국 해군 기지로 사용되다가 2006년부터 현재의 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 공간으로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사진=고희수 기자
가왕 이난영과 한류의 원조 김시스터즈 특별기획전, 사진=고희수 기자
가왕 이난영과 한류의 원조 김시스터즈 특별기획전, 사진=고희수 기자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해방 이후 조흥은행, 목포문화원을 거쳐 2022년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변모했다. 붉은색 타일이 멋스러운 이 건물은 한국인이 설립하고 운영한 민족 은행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2층에서 ‘가왕 이난영과 한류의 원조 김시스터즈 특별기획전’을 전시 중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목포의 눈물 구슬픈 노래가 들려온다. 이난영의 애절한 목소리에 이별의 아픔 목포의 설움이 묻어난다. 1930년대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심에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있었다. 처음에 ‘목포의 사랑’으로 응모했지만 ‘목포의 눈물’로 음반을 냈다. 목포의 눈물은 호남의 눈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눈물이다. 목포 덕인학원 중학교에서 25년간 국어를 가르친 최여숙 선생님은 “목포의 눈물에는 망국의 한이 서려 있다. 일제에 대한 저항심이 흐르고 유달산의 슬픈 애환과 정서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목포의 가수에는 이난영의 두 딸과 조카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 김시스터즈와 남진 조미미가 유명하다. 

 

목포진 역사공원,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진 역사공원, 사진=고희수 기자
소년 김대중 공부방, 사진=고희수 기자
소년 김대중 공부방,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진지는 세종 때 영산강 하구 바닷길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수군 기지 ’목포진‘의 터다. 일제강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유물 발굴과 고증을 거쳐 목포진 역사공원으로 복원되었다. 

소년 김대중은 보통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신안에서 목포로 이사왔다. “뭍으로, 큰 곳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배에 올랐다. 1936년 가을이었다.”고 회고했다.

 

목포시 번화로 카페,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시 번화로 카페, 사진=고희수 기자
경동성당, 사진=고희수 기자
경동성당,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오거리문화센터(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오거리문화센터(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사진=고희수 기자
성옥기념관, 사진=고희수 기자
성옥기념관, 사진=고희수 기자

근대여행도 식후경이다. 목포는 미식의 도시답게 으뜸맛집도 즐비하다. 동네 주민 10여 명이 공동 출자한 낭만맛집의 안수경 조합장은 "이곳 음식점은 목포항에서 가져온 싱싱한 식재료를 쓰기 때문에 맛이 좋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항문화거리를 걷다 보면 인테리어가 독특한 다양한 카페들도 만난다.

목포시는 원도심 일대에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시작한 이 사업은 근대건축자산을 보수·정비해 역사성을 보존하는 한편 전시·체험·창업공간으로 활용해 원도심을 활성화하고, 유달·만호동 일대의 가로경관을 쾌적하게 개선하는 것으로 오는 2025년까지 계속된다.

 

【목포해상케이블카】

유달산에서 본 케이블카와 목포시내 전경, 사진=고희수 기자
유달산에서 본 케이블카와 목포시내 전경,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해상케이블카,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해상케이블카,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시 까마득한 상공에 케이블카가 떠다닌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시내 북항을 출발하여 유달산 정상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 반달 섬 고하도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 온다. 3.23km의 압도적인 탑승 거리를 자랑하며 40분이 소요된다. 고하도에서 탑승하여 유달산과 북항을 왕복하는 코스도 있다.  

북항스테이션에서 바닥이 투명한 하얀색 크리스탈 캐빈을 탔다. 유리가 깨질 것 같아 감히 바닥에 서보지 못하고 엉거주춤 의자에 앉기만 했다. 영혼도 쉬어간다는 유달산이 다가온다. 당당한 일등바위와 이등바위 소요정 정자도 가까이 지나간다. 유서깊은 목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유달산에서 본 고하도, 사진=고희수 기자
유달산에서 본 고하도,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해상케이블카 주탑,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해상케이블카 주탑,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해상케이블카 크리스탈 캐빈, 사진=고희수 기자
목포해상케이블카 크리스탈 캐빈, 사진=고희수 기자
고하도와 목포대교, 사진=고희수 기자
고하도와 목포대교, 사진=고희수 기자

케이블카가 유달산 정상에서 바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노적봉과 삼학도 이난영 공원, 갓바위, 목포진, 반달 모양의 고하도와 외달도, 다도해 전경, 목포대교 등 목포 9경이 잇따라 펼쳐진다. 

케이블카 5번 타워는 높이가 무려 155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바닷바람이 윙윙거리며 유리창을 때린다. 손톱처럼 작게 보이는 선박이 이리 저리 흔들린다. 오금이 저려 간신히 사진을 촬영했다. 괜히 크리스탈을 탔나 보다. 

 

고하도 전망대, 사진=고희수 기자
고하도 전망대, 사진=고희수 기자

고하도에 도착했다. 고하도는 이충무공이 13척의 판옥선으로 명랑대첩 승리 후 106일 동안 머무르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던 곳이다. 이곳에 13척의 판옥선 모형을 격자형으로 쌓아 올린 고하도 전망대와 이충무공기념비가 세워졌다. 

 

유달산과 케이블카, 사진=고희수 기자
유달산과 케이블카, 사진=고희수 기자
노적봉, 사진=고희수 기자
노적봉, 사진=고희수 기자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 사진=고희수 기자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 사진=고희수 기자

고하도에서 북항으로 돌아갈 때는 빨간색 일반 캐빈을 이용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 덜 불안했다. 목포의 중심에 유달산이 있다. 노적봉은 해발 60m에 불과하지만 위장 전술로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호국 혼이 담겨 있는 바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개항 시절 노적봉 남쪽 아래 언덕에 영사관을 지었다.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에서 ’형형색색 무한 변주‘ 전이 열리고 있다.

※ 사진 촬영 : 2월 23일(목), 24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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