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문, 사진=박종철 기자
돈화문, 사진=박종철 기자
금천교와 궐내각사, 사진=박종철 기자
금천교와 궐내각사, 사진=박종철 기자
진선문, 사진=박종철 기자
진선문, 사진=박종철 기자
창덕궁 책고, 사진=박종철 기자
창덕궁 책고, 사진=박종철 기자

창덕궁은 1405년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한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할을 했다. 마지막 임금 순종 때까지 약 500년 동안 조선왕조의 역사와 함께하며 임금들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거처했다. 북악산 응봉 자락에 아름답고 넓은 후원을 갖추고 있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조선 시대에는 두 궁궐을  ‘동궐’이라 불렀다.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이 넓은 월대 위에 세워져 있다. 궁궐에서 제일 큰 대문답게 정면 5칸 누각형 목조건물이 크기부터 압도한다. 경복궁의 광화문과 창경궁의 홍화문, 덕수궁의 대한문, 경희궁의 흥화문은 정면 3칸이다.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는 돈화문은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으로 왕의 행차나 국가행사를 치를 때 드나든 문이다. 돈화문에서 금천교를 지나면 궐내각사와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낙선재의 전각이 이어진다.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흐르는 명당수 위에 놓인 돌다리 금천교가 6백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1411년 건립된 이후 숱한 화재와 전란을 겪었으나 아직도 튼튼하다. 다리 아래 북쪽에 있는 거북이 상 위에 장수를 기원하는 동전들이 쌓여있다. 김해란 해설사는 “금천교는 궁궐의 안과 밖의 경계로 당시에 관리들이 금천교를 넘어야 궐내각사에 출근한 것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인정문, 사진=박종철 기자
인정문, 사진=박종철 기자
인정전과 품계석, 사진=박종철 기자
인정전과 품계석, 사진=박종철 기자
인정전 어좌, 사진=박종철 기자
인정전 어좌, 사진=박종철 기자

10월 26일(수) ‘문화가 있는 날’ 창덕궁은 아침부터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서정초등학교와 아주초등학교 어린이들도 궁궐을 찾아 역사 공부에 나섰다. 인정문은 어진 정치를 하는 인정전의 정문으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 여러 임금이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오른 곳이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나라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없어 경복궁 근정전에 비해 소박하다. 왕의 용상과 단청은 고동색으로 근정전의 붉은색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천장이 높고 어좌 뒤로 일월오봉도가 있다. 

 

선정전과 청기와, 사진=박종철 기자
선정전과 청기와, 사진=박종철 기자

선정전 청기와가 가을 햇살에 파랗게 빛난다. 선정전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으로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맑은 날 방문하면 고색창연한 청기와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으로 쓰이기도 했다.

 

희정당, 사진=박종철 기자
희정당, 사진=박종철 기자
성정각, 사진=박종철 기자
성정각, 사진=박종철 기자
낙선재, 사진=박종철 기자
낙선재, 사진=박종철 기자

희정당은 선정전의 편전 기능을 대신하며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건물이다. 1920년 재건 공사 때 왕의 자동차와 마차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입구를 서양식으로 꾸몄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었다. 현재 공사중이다. 

성정각 맞은편 행각에 약을 지어 왕의 몸을 보호한다는 ‘조화어약(調和御藥)’ ‘보호성궁(保護聖躬)’이란 편액이 보인다. 왕을 나타내는 '御’자와 ‘聖躬’ 자가 다른 글자 보다 높이 쓰여있다. 

낙선재는 왕의 서재 겸 사랑채이다. 헌종은 사랑하는 후궁 경빈 김씨를 애틋하게 여겨 낙선재 옆에 이례적으로 석복헌을 지었다. 낙선재와 석복헌은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하고 단아하다. 영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서, 마지막 황실 가족인 덕혜옹주는 석복헌 옆에 있는 수강재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가 1989년 열흘 사이로 세상을 떠났다. 

 

창덕궁 후원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 사진=박종철 기자
창덕궁 후원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 사진=박종철 기자
부용지와 주합루 서향각 영화당, 사진=박종철 기자
부용지와 주합루 서향각 영화당, 사진=박종철 기자

11월 2일(수) 창덕궁 후원에 연못과 정자가 울긋불긋 단풍과 어우러지며 운치를 더한다. 부용지와 애련지 연경당 관람지 옥류천 정원 등을 왕의 걸음으로 걸어 보았다. 창덕궁 후원은 해설사와 동행하는 제한 관람으로 인터넷과 현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예매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창덕궁 창건 당시 조성되었다. 창덕궁뿐만 아니라 창경궁의 후원이기도 하였으며 비원으로 많이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서 아시아의 3대 정원 중 하나이다. 창덕궁 전체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 이곳에서 왕과 신하들은 문무를 즐겼고 농사와 누에를 치기도 했다. 

부용지 일원의 풍광이 뛰어나다. 천원지방의 사각형 연못과 둥근 섬, 부용정과 주합루 서향각 영화당이 궁궐 뒷동산 골짜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비경이다.

 

불로문, 사진=박종철 기자
불로문, 사진=박종철 기자
애련지와 애련정, 사진=박종철 기자
애련지와 애련정, 사진=박종철 기자
연경당, 사진=박종철 기자
연경당, 사진=박종철 기자
연경당 뒷 길, 사진=박종철 기자
연경당 뒷 길, 사진=박종철 기자
존덕정과 폄우사, 사진=박종철 기자
존덕정과 폄우사, 사진=박종철 기자
취규정, 사진=박종철 기자
취규정, 사진=박종철 기자

애련지로 들어가는 길에 통돌을 깎아 만든 돌문 ‘불로문’이 있다. 효명세자가 지은 연경당을 지나면 독특한 두 겹 지붕 존덕정과 폄우사가 나온다. 옥류천으로 가는 고갯마루에 독서처로 알려진 취규정이 있다. 방시레 해설사는 “신하들이 모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왕이 배려하는 마음으로 취규정을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류천과 소요정, 사진=박종철 기자
옥류천과 소요정, 사진=박종철 기자
청의정, 사진=박종철 기자
청의정, 사진=박종철 기자

후원 북쪽 깊은 골짜기에 옥류천이 흐른다. 인조는 1636년 거대한 바위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다. 소요정과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 등의 정자도 곳곳에 세웠다.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관광 100선에 5회 전부 선정되었다. 

※ 사진 촬영 : 10월 26일(수), 11월 2일(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바끄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