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현해탄은 파란 풀잎으로 흔들리고

구 군산시청 광장 시간여행 관광안내소, 사진=박종철 기자
구 군산시청 광장 시간여행 관광안내소,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은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특히 원도심에 위치한 군산시간여행마을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과 이에 항거한 선조들의 혼이 살아 있는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100여 년 전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특별한 체험을 한다.

군산시는 지난 5월부터 시간여행마을에서 ‘해설사와 함께 여행하는 <동행투어>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갔다. 코로나19로 2020년 2월에 중단했다가 2년 3개월 만에 재개했다. A코스(모던로드)는 장미갤러리–근대미술관–근대건축관–진포해양테마공원을 관람하고 B코스(타임로드)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말랭이마을–동국사–초원사진관 등을 둘러본다. 이성당 앞 시간여행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한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학생들,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학생들, 사진=박종철 기자

레트로 바람이 불면서 젊은이들도 군산 시간여행마을을 많이 찾는다. 7월 15일(금) 모던 로드 투어에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했다. 2학년이라고 밝힌 한 여학생은 “오늘 동아리 도서부의 날을 맞이해 체험활동 나왔다. 역사에 관심이 있어 많이 기대 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 손민영 선생님은 “요즘 학생들은 노는 것보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체험하거나 경험해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학교에서도 체험학습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근대미술관,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근대미술관,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근대건축관,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근대건축관,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근대건축관 내부,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근대건축관 내부, 사진=박종철 기자

근대미술관의 전신은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1911년 장미동에 들어선 구 일본제18은행 군산 지점이다. 장미동의 장미는 장미꽃이 아니라 쌀을 저장한다는 뜻이다. 근대미술관은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일제시대에 사용되었던 대형금고가 전시되어 있다. 

장미동은 군산 내항과 인접해 있어 일제강점기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이 많이 모여 있다. 구 조선은행 군산 지점도 1922년 이곳에서 건립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근대건축관으로 변모했다. 붉은 벽돌로 지은 4층 높이의 2층 건물로 군산을 대표할만한 중요한 건물이다. 김중식 해설사는 “일제는 쌀을 쉽게 운송하기 위하여 장미동에 국내 최초로 포장도로를 건설했다”며 “미술관과 건축관 앞에 있는 이 도로가 바로 그때의 도로이다. 일제는 군산항을 통해서 우리 쌀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진포해양공원, 사진=박종철 기자
진포해양공원, 사진=박종철 기자
밀물때 뜬다리 부두, 사진=박종철 기자
밀물때 뜬다리 부두, 사진=박종철 기자
진포해양공원, 사진=박종철 기자
진포해양공원, 사진=박종철 기자

진포해양공원은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함포를 만들어 500여척의 왜선을 물리쳤던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8년에 개관했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참전 국가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부잔교(뜬다리)가 밀물 때에 맞춰 물 위로 떠 올랐다. 위풍당당하게 정박해 있는 해군상륙함(LST)  위봉함에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미국의 태평양 장악 등 세계 해전의 역사가 쓰여 있다. 해양 공원에는 탱크 군함 전투기 등 육 해 공군의 퇴역 장비 16대가 전시되어 있다. 

 

보수중인 호남관세박물관, 사진=박종철 기자
보수중인 호남관세박물관, 사진=박종철 기자

옛날 군산세관 본관이었던 호남관세박물관은 한국은행 본점 및 서울역사와 함께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지붕을 보수하고 있어 9월까지 휴관한다. 가림막 사이로 건물 일부가 보인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도 내부 리모델링 공사로 올해 말까지 휴관한다. 

 

해망굴, 사진=박종철 기자
해망굴, 사진=박종철 기자
월명공원 수시탑, 사진=박종철 기자
월명공원 수시탑, 사진=박종철 기자
썰물때 시간여행마을, 사진=박종철 기자
썰물때 시간여행마을,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 말랭이마을,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 말랭이마을, 사진=박종철 기자

원도심 주택가를 폭넓게 둘러보는 타임 로드 코스는 약 2시간 소요된다. 해망굴은 일제시대 수산물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해망령을 관통한 터널로 1926년 건설되었다. 한국전쟁 때 격전을 벌였던 총탄 자국이 굴 입구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니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 길이 131m 높이 4.5m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월명공원에 무궁화꽃이 피었다. 전망대에서 금강하구와 건너편 장항읍 서해 바다 군산 원도심이 보인다. 돛을 펼친 배 모양의 하얀 수시탑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지어졌다. 신경애 해설사는 “거푸집이 낡아서 콘크리트 구조물이 매끈하게 나오지 못했다”며 “처음 30m 높이로 계획했지만 예산이 부족하여 28m로 줄였다”고 말했다. 

월명공원에서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면 말랭이 마을이 나온다. ‘말랭이’는 산비탈을 의미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6.25 전쟁 때 피란민이 지금의 해망동 신흥동 등 월명산 산비탈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 사진=박종철 기자
신흥동 일본식 가옥, 사진=박종철 기자
여미랑, 사진=박종철 기자
여미랑,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항쟁관, 사진=박종철 기자
군산항쟁관, 사진=박종철 기자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인 야시키 형식의 대규모 목조주택으로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등 한국 영화가 촬영되었다. 

여미랑(구 고우당)은 悆(잊을 여), 未(아닐 미), 廊(사랑채 랑)으로 아픈 역사와 하룻밤 묵으면서 만든 추억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일본식 숙박시설이다.  

군산항쟁관은 100여 년 된 주택을 리모델링 한 곳으로 군산 항일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군산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나흘 뒤인 3월 5일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켰던 도시다. 

 

동국사 & 군산평화소녀상, 사진=박종철 기자
동국사 & 군산평화소녀상, 사진=박종철 기자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 승려들은 2012년 9월 일제의 만행과 자신들의 첨병 역할을 참회하고 사죄하는 글인 참사문을 음각한 비석을 군산시 동국사에 세웠다. 일본 승려는 참사문에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폭거를 범했으며 한국을 강점하여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했다”고 고백했다. 신경애 해설사는 “일본 스님은 절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막식을 봉헌한 날 비가 많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스님이 절을 했다.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국사 경내에 고광국 조각가의 ‘군산 평화소녀상’이 보인다.

어디를 바라보며 무엇을 기다리나?
일렁이는 현해탄은 파란 풀잎으로 흔들리고 타들어 간 마음은 까만 조약돌이 되었다. 

우리 역사 속 아픔을 자신의 인생으로 오롯이 겪어낸 소녀의 뒷모습이 처연하다. 

 

초원사진관 & 군산 구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사진=박종철 기자
초원사진관 & 군산 구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사진=박종철 기자

초원사진관은 1998년에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장소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사진사 유정원(한석규분)은 이곳에서 주차 단속원 김다림(심은하분)을 처음 만나고 사랑을 간직한 채 먼 나라로 떠난다. 

시간여행마을 골목길은 바둑판처럼 곧게 뻗어있고 깨끗하다. 군산시는 이달 초 부터 시간여행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달빛산책 야간포토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로 유명한 전라북도 군산시의 시간여행마을은 한국관광 100선에 4회 연속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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