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와 검은 나비, 사진=박종철 기자
무궁화와 검은 나비, 사진=박종철 기자

2021년 8월 25일(수) 정오.
나라의 꽃 겨레의 꽃 무궁화가 서울 도심에 피었다. 커다란 검은 나비 한 마리가 꽃잎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일제 탄압으로 선열들의 고통과 한이 서린 붉은 담장이 마주 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정문, 사진=박종철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정문, 사진=박종철 기자

일본 제국주의가 지은 근대식 감옥 서대문 형무소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하늘도 민족의 아픔을 아는 듯 회색빛 구름으로 찌푸려 있다. 형무소는 4m 높이의 붉은 벽돌담으로 사회와 격리되어 있다.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10m 높이의 망루가 위압적으로 솟아있다. 

 

민족저항실 수형 기록표, 사진=박종철 기자
민족저항실 수형 기록표, 사진=박종철 기자

“나오세요. 많이 추우셨죠? 많이 힘드셨죠? 많이 아프셨죠? 많이 그리우셨죠? 나오세요. 그 아픈 기억에서 이젠 벗어나세요. 당신이 목숨 바쳐 지킨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컸습니다. 많이 큰 대한민국을 지켜봐 주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대한민국이 당신을 문밖에서 기다립니다.” 
5천여장의 독립운동가 수형 기록표가 민족 저항실 벽면에 가득하다. 사진을 보고 또 보아도 끝이 없다. 빚진 마음에 가슴이 먹먹하다. 한참 서 있었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 사진=박종철 기자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모형, 사진=박종철 기자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목 매는 밧줄을 처음 보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높지 않고 바로 머리 위에 걸려 있어 섬뜩하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이곳에서 사형당한 강우규 의사의 '절명시'가 가슴속에 비수처럼 파고든다. 삶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대못상자, 사진=박종철 기자
대못상자, 사진=박종철 기자

전시관 지하에는 물고문, 손톱 · 입속 찌르기 고문, 벽관 고문 등 독립운동가들에게 견디기 힘든 온갖 고문을 자행한 고문실이 있다.  나무상자에 날카로운 대못이 빽빽하게 박혀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간수는 대못상자에 독립투사를 가둬 놓고 흔들어 댔다. 심지어 일부 수감자는 극심한 고통으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순자의 성악설을 믿기로 했다. 

 

부채꼴 옥사, 사진=박종철 기자
부채꼴 옥사, 사진=박종철 기자

일제는 식민지 대한민국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왼쪽부터 10·11·12옥사다. 부채꼴 옥사 중앙에서 간수는 수감자를 감시했다. 복도 천장에는 채광창을 내어 수감자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했다. 

 

애국지사 초상화 특별전, 사진=박종철 기자
애국지사 초상화 특별전, 사진=박종철 기자

“우리의 영웅, 오래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김영관, 오상근, 이영수, 오희옥, 승병일, 이석규, 이일남, 이준호, 이태원, 임우철, 장병하, 지익표, 강태선, 권중혁, 김영남, 백운호 생존 애국지사 16분의 여명이 어느덧 황혼기에 이르렀다. 이 분들의 초상화 특별전이 10옥사에서 열리고 있다.

 

징벌방(먹방), 사진=박종철 기자
징벌방(먹방), 사진=박종철 기자

양팔을 뻗을 수 없고 혼자 눕기에도 좁다. 문을 닫아 보니 캄캄하고 답답하여 질식할 것 같다. 겁이 덜컥 나 곧바로 문을 열었다. 징벌방은 0.7평으로 비좁고 변기도 없는 생지옥이다. 빛이 차단되고 먹처럼 깜깜하여 ‘먹방’이라고도 한다. 일제는 애국지사들을 특수 범죄자로 분류하여 이곳 징벌방에 투옥시킨 후 갖은 악형을 일삼았다. 

 

수감 체험, 사진=박종철 기자
수감 체험, 사진=박종철 기자

어린이들이 옥사 감방 안에 들어가 수감체험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격동의 현장과 함께하며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이 감옥에서 독립운동가들은 벽을 두드려 정보를 주고 받는 타벽통보법(打壁通報法)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초기 사형장 터, 사진=박종철 기자
초기 사형장 터, 사진=박종철 기자

1908년 서대문 형무소가 경성 감옥으로 문 열었을 때 최초로 설치된 사형장이 있던 자리이다. 이 연못은 지하공간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첫 사형장은 한 번에 두 명씩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교수대를 두 개 설치했다. 이곳에서 이강년 허위 이인영 등 항일 의병장과 이재명 강우규 의사 등 70여 명 이상의 독립운동가들이 사형당했다. 1921년 전후 옥사를 신축하면서 현재의 사형장 위치로 이전하였다. 

 

"엄마 무서워?", 사진=박종철 기자
"엄마 무서워?", 사진=박종철 기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은 원통한 마음에 ‘통곡의 미루나무’를 붙잡고 울었다. 세월이 흘렀고 이 나무도 수령이 100년을 넘어 고사했다. 검은 천이 나무를 감싸고 있다. 선열들의 눈물인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엄마 혼자 사형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린 소녀는 멀리서 애써 외면하고 팜플렛을 보지만 신경은 온통 사형장에 가 있다. “엄마 무서워?” 어린이가 엄마 손을 잡으며 물었다. 

사형장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올가미 줄이 내려져 있다. 밑에 있는 나무 의자와 함께 잔상으로 남는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나무 책상과 집행관이 배석하는 자리가 있다. 저 하찮은 밧줄이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숭고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갔는가? 뒤쪽으로 가보니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장치와 도르레가 보였다. 

 

사형장 건물, 사진=박종철 기자
사형장 건물, 사진=박종철 기자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왔다. 일본식 목조건물 사형장이 오늘 날씨처럼 을씨년스럽다. 이곳은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형무소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사형장이 뒤쪽 담장과 바짝 붙어 있다. 한 걸음만 뛰면 넘어갈 수 있는 거리다. 저 담 너머에는 자유가 있는 세상, 안산의 산자락이다. 삶과 죽음이 담장 위에서 교차되었다.

 

격벽장과 독립군 기, 사진=박종철 기자
격벽장과 독립군 기, 사진=박종철 기자

빨강 노랑 파랑 하얀색 만장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광복 76주년 기념 깃발전 ‘독립군의 기(氣) 휘날리다’가 격벽장 앞에서 열리고 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장을 누볐던 39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손글씨에 담겨있다. 외국인들도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격벽장은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곳으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유관순 열사 8호실 감방, 사진=박종철 기자
유관순 열사 8호실 감방, 사진=박종철 기자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3.1독립만세운동 1주년인 1920년 3월 1일 유관순 열사가 투옥된 여옥사 8호실 감방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옥사에 갇힌 박인덕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영식 임명애 김향화 심명철 등 여자 수감자와 3천여 남자 수감자도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우렁찬 만세 소리 함성에 형무소 밖으로 인파가 몰려들었고 전차통행이 마비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6개월 후 이곳에서 18세 나이로 순국했다. 기미년 3월 1일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인 날이다.

 

아! 태극기, 사진=박종철 기자
아! 태극기, 사진=박종철 기자

아! 태극기다. 가슴이 뛴다. 옥사 밖으로 나오니 드디어 '자유'다.  9옥사 벽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다. 많은 선열들이 눈물과 땀과 희생으로 지켜낸 우리의 국기다. 태극기가 이렇게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오늘 새삼 느꼈다. 광복의 달 8월에 형무소에서 만난 태극기는 벅찬 감동 그 이상이다. 우리의 희망인 어린이들도 함께 한다.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밝아온다.

일제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하고자 한일합병 2년 전인 1908년 경성 감옥을 지었다.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에 맞섰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이곳에 투옥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87년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서대문구에서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하였으며 올해 처음으로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었다.

※사진 촬영 : 8월 25일(수), 8월 27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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