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장밋빛 인생을 꿈꾼다. 덕수궁길 서울시립미술관에 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시들지 않는 ‘장미빛 인생’ 꽃송이가 오가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조각공원이 무어라 속삭이고 미술관 작품들은 우리를 고대하고 있다.
미술관에 가면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인생이 녹아있는 작품을 보는 지금이 장밋빛 인생의 한 순간이다. 예술을 만나는 순간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영원을 빚은 조각가 권진규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 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권진규(1922~1973)의 발자취를 회고하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를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연다.
노실은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로 ‘노실의 천사’는 아틀리에의 천사, 즉 그가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순수한 정신적 실체로 해석된다.
‘노실의 천사’ 전시에는 유족과 권진규기념사업회가 기증한 작품 141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고려대박물관, 리움, 가나문화재단, 금샘문화재단, 대구백화점, PKM Gallery, 방탄소년단 RM 등이 대여한 작품 등 총 240여 점이 선보인다. 동물상 여성상 자소상 불상 예수상 등 다양한 소조와 조각 부조 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등을 총망라했다.
권진규의 조카 허명회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3월 31일(목)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 특별 도슨트 ‘나의 외삼촌 권진규’에서 “권작가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접했는데 권작가는 동물상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건칠로 만든 그리스도상은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교수는 “권작가는 일제 징용에 대해서는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며 “권작가가 타계하기 전에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에게 ‘예술가로서 내가 할 일은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권진규의 다른 조카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4월 2일(토) 서소문 본관에서 열린 특별 도슨트 ‘나의 외삼촌 권진규’에서 “BTS의 RM이 3월 26일 전시장을 찾아와 둘러보고 자기가 대여한 ‘말’ 작품의 제작연도가 1965년경이라고 알려주었다. RM이 매우 훌륭한 예술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대표는 “내가 재수할 때 외삼촌과 같이 이중섭의 황소 작품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외삼촌은 소에 감동을 받아 갑자기 내가 들고 있던 황순원 소설책을 빌려 달라고 하더니 그 위에 스케치를 하였다. 그리고 아틀리에로 돌아와 마지막 작품인 흰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허대표는 “작품을 팔 수도 없고 보관 전시로 고민도 많이 했는데 상설관이 생기게 되어서 미술관에 고맙다”고 덧붙였다. 허대표는 최근 권진규의 삶과 예술을 담은 평전 '권진규'를 출간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권진규는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확고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한희진 학예연구사는 "권진규는 자신을 예술가이기 전에 장인으로 칭했다"며 "그의 예술관인 영원성, 전통의 현대화와 맞닿아 있는 테라코타와 건칠 제작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권진규 작품과 김이순 교수(홍익대학교), 권혁규(독립 기획자), 한희진 큐레이터의 글이 담긴 도록은 4월 중 나올 예정이다. 4월 7일에는 전시 특별 공연 <콰르텟 S 특별 연주회 - 권진규가 사랑한 클래식>이 열리고 4월 9일에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권진규는 이중섭(1916~56) 박수근(1914~65) 등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꼽힌다.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린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1973년 5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둘러본 후 작업실로 돌아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천사를 향해 떠났다.
서울시립미술관은 3월 22일부터 5월 8일까지 서소문 본관에서 ‘시적 소장품 The Poetic Collection’을 개최한다.
‘시적 소장품’은 미술관이 그동안 수집해 온 소장품을 통해 현대미술과 ‘시적인 것’의 관련성을 탐구한다. 이 전시는 2022년 미술관 전시 의제인 ‘시(詩)’를 중심으로 시의 속성을 통해 소장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화자의 특성, 고백적 성격, 시의 언어적 측면에 주목하여 ‘말하는 사람’, ‘고백(록)’, ‘시와 미술’의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권아람, 김동규, 김범, 김세은, 김세진, 노석미, 뮌, 박경주, 박미나, 박상숙, 박혜수, 배윤환, 변웅필, 송영규, 신경희, 염지희, 윤진미, 이건용, 이교준, 이동기, 이슬기, 이은실, 장성은, 전소정, 전준호, 정강자, 조소희, 주황, 최병소, 최은혜, 함혜경 작가가 참여하여 46점을 전시중이다.
“내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
한국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 천경자(1924-2015) 화백은 1998년 시민과 후학들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자신이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어 온 작가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그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천경자 상설전시는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라는 이름으로 2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천경자 전시는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환상의 드라마’ ‘영혼의 여행자’ ‘자유로운 여자’ 등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가나아트 컬렉션 기획상설전 ‘허스토리 리뷰’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미술 전시로 당시 여성 작가들의 역사와 일상적 삶에 얽힌 개인적, 사회적 시선을 조망한다.
가나아트 컬렉션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200점의 작품군으로 1980-90년대 한국의 사회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민중미술 및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포괄한다.
김원숙, 김인순, 김진숙, 노원희, 민영순, 박영숙, 박인경, 송매희, 송현숙, 안성금, 윤석남, 윤진미, 정정엽, 한애규 작가가 참여하여 24점을 선보이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 오솔길을 산책하면 장미빛 인생(최정화), 생각하다(배형경), 대나무(서정국), 숲의 수호자(최우람), 소통(조성숙), 항-대화(이우환), 섬(김혜원), 꿈(민복진), 서울을 그리다(임옥상)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SeMA, Seoul Museum of Art)은 시대와 미술의 변화에 부응하고 서로를 채우며 성장해 가는 네트워크 미술관이다.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며 모두가 만나고 경험하는 문화가 있는 공간이다. 서울 근현대사 역사를 고스란이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 위치한 서소문 본관은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시, 교육, 스크리닝, 워크숍, 공연, 토크 등 프로그램과 더불어 카페, 예술 서점, 로비 공간, 야외 조각 공원은 다양한 미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2021년 한국관광 100선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 사진 촬영 : 3월 31일(목), 4월 1일(금), 4월 2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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