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사진=박종철 기자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사진=박종철 기자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용흥궁 공원 언덕에서 천주성전이 밝게 빛나고 있다. 2층 기와집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십자가가 섰다.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성당은 처음 본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성당보다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고요한 초대 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것으로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船)의 형상을 따랐다.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가 건축 공사를 주도하였고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내부, 사진=박종철 기자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내부, 사진=박종철 기자

대한성공회 강화 성당 실내는 온통 나무 천지이다. 대리석으로 꾸민 유럽의 성당과 다르다. 1층 가장자리에 회랑을 배치했고 목조 기둥 높은 곳에 대들보와 서까래를 올렸다. 자연 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유리창을 냈으며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불을 밝히고 있다. 내부는 유럽식 바실리카 양식을 도입했다. 동서양의 미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사진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와까즈끼 에이꼬 문화관광해설사는 “장엄하고 튼튼한 성당을 짓기 위하여 수백 년 이상 된 백두산 적송을 뗏목에 실어 압록강과 신의주 서해를 통해 들여왔다”며 “석재와 기와는 강화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고려궁지와 외규장각, 사진=박종철 기자
고려궁지와 외규장각, 사진=박종철 기자

고려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1232년 강화천도 이후 39년간 머물렀던 궁궐은 사라지고 고려궁지 빈터만 남아있다. 지금은 조선 인조 때 심은 400년 넘은 회화나무와 외규장각,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강화유수부 동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용흥궁, 사진=박종철 기자
용흥궁, 사진=박종철 기자

용흥궁은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조선의 왕 철종이 왕이 되기 전까지 거처했던 곳이다.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보위에 오르고 4년 만에 기와집으로 짓고 궁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700년 은행나무, 사진=박종철 기자
700년 은행나무, 사진=박종철 기자

커다란 은행 나무가 무려 727년을 살았다. 무성했던 잎이 떨어지고 2021년이 저물어 가며 또 한해를 더한다. 700년 은행나무는 1982년 강화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할 당시 수령이 이미 688년이었다. 강화의 수호신으로서 고려궁지 옆에서 우리의 역사와 오롯이 함께했다.

 

심도직물 굴뚝과 용흥궁 공원, 사진=박종철 기자
심도직물 굴뚝과 용흥궁 공원, 사진=박종철 기자

화문석을 짜던 강화 여인들의 손재주는 섬세하고 탁월했다. 강화읍에서 직물 산업은 197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심도직물 이화견직 조양방직 평화직물 남화직물 등 수십개의 크고 작은 공장들은 인근 김포와 서울로부터도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대구 섬유산업 발달과 중국산 면직물 수입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용흥궁 공원 한편에 심도직물 굴뚝과 직조기 등이 보인다. 심도직물 공장 터는 용흥궁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화견직 담장길은 강화 직물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스토리보드로 꾸몄다. 

 

조양방직 카페, 사진=박종철 기자
조양방직 카페, 사진=박종철 기자

카페라기보다 거대한 전시장 같다. 2천여 평에 이르는 조양방직 건물의 골조와 벽면 바닥이 그대로 남아있다. 조양방직은 1933년 국내 자본으로는 최초로 설립된 인견 공장이었으나 폐업한 후 오래도록 방치되었다가 2018년 카페와 미술관으로 예쁘게 다시 태어났다. 

 

소창체험관, 사진=박종철 기자
소창체험관, 사진=박종철 기자

12월 22일(수) 소창체험관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 휴관중이다. 강화군은 1938년에 건축된 한옥과 염색공장이 있는 옛 평화직물을 2016년에 매입한 후 소창체험관으로 리모델링하였다. 이 곳에서는 강화 직물 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노동사목 표지석, 사진=박종철 기자
노동사목 표지석, 사진=박종철 기자

직물 산업이 호황을 누렸던 시기에 어린 소녀들은 과한 노동에 시달렸다. 이에 반발하여 천주교 강화성당을 중심으로 심도직물 노동조합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천주교가 노동 문제에 적극 개입한 첫 사례로 노동 운동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강화성당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노동사목 표지석을 세웠다.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 사진=박종철 기자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 사진=박종철 기자

강화군민은 1919년 3월 7일 장날에 김포읍 군민들까지 합세하여 2만4천여 명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1994년 강화읍에 강화 3.1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웠으며 2011년 8월 용흥궁 공원으로 이전하였다. 박찬규 김교창 김용환 박길양 신의철 염성오 유경근 유학서 이봉석 이사국 이윤문 이인식 이희화 장상용 정인섭 탁영래 황용근 황일남 한이호 장수봉 등 강화군 독립 유공자 기념석이 있다. 

 

합일초등학교, 사진=박종철 기자
합일초등학교, 사진=박종철 기자

합일초등학교는 1901년 선교와 교육입국을 위하여 미국인 선교사 조원식과 강화교회의 박능일 목사가 잠두의숙으로 설립하였다. 합일초등학교 앞 독립운동길에는 김구 선생이 친필로 쓴 ‘홍익인간’ 휘호와 독립운동했던 강화 사람들에 대한 판결문을 부조 형식으로 만든 스토리보드가 있다. 

 

강화중앙교회, 사진=박종철 기자
강화중앙교회, 사진=박종철 기자

1900년에 설립된 강화중앙교회에 순국 추모비가 있다. 1907년 일제에 의한 한국군대 강제해산으로 강화 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 교인 김동수 김남수 권사와 김영구 성도를 주모자로 몰아 체포하였다. 일본군은 김권사 3형제를 포승줄로 꽁꽁 묶은 채 서울로 압송하던 도중 더리미 해안에서 일본 칼로 즉결 처형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강화중앙교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김권사 형제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하여 2003년 8월 추모비를 세웠다.
 

강화 원도심 전경, 사진=박종철 기자
강화 원도심 전경, 사진=박종철 기자

고려 고종이 개성에서 강화로 천도하며 강화산성을 축조하자 성내에 도읍이 생겼다. 강화 원도심 스토리워크는 고려궁지와 강화성당 등 도심의 볼거리를 만나는 약 3km 도보 여행 코스다. 왕의길 북산벚꽃길 고궁길 추억의길 새시장길 양조장길 한옥길 별밤거리 등을 천천히 걸으며 역사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고 산업과 독립운동 종교 등 다양한 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한국관광 100선에 올해 처음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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